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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제2연평해전

실화괴담/사건사고|2019. 3. 30. 13:53

제2 연평해전(第二延坪海戰), 연평도 근해 북방한계선 부근 해상에서 일어난 남북 간의 군사적 충돌 사건으로 대한민국 해군과 조선인민군 해군 모두 많은 사상자를 남겼다

 

제2연평해전

제1 연평해전으로부터 3년 후인 2002년 6월 29일 한일월드컵이 막바지에 이른 시기, 09시 54분 ~ 10시 01분, 북한 등산곶과 육도에서 경비정 2척이 기동하여 북방한계선을 침범하였다 대한민국 고속정 2척이 차단 기동을 실시하기 위해 접근하자 북한 육도 경비점은 북상했다

 

10시 23분, 북한 등산곶 경비정은 계속 남하하여 북방한계선 5.6km 침범했고 대한민국 고속정 편대가 0.9km 전방에서 차단기동을 실시했다

 

10시 25분, 북한 경비정이 예고 없이 대한민국 고속정 편대의 참수리 357정에 대해 85mm 함포로 선제 기습사격으로 북한과의 교전이 시작되었다 사격 대응 명령을 내린 윤영하 대위는 초탄 파편과 총탄 여러 발들을 흉부, 두부, 옆구링등 주요 부위에 맞고 가슴과 등에 관통 당해 전사하였다 이후 의식이 없는 정장을 대신해 이희완 부장이 지휘권을 받았다 조타장 한상국 중사(진)가 조타실 피격으로 전사했다
승조원들을 중상을 입었다 이어진 사격으로 엔진이 정지되고 전력 공급 기기가 파괴되어 357정은 전투 불능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이희완 중위는 부상당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진두지휘를 감행해 비상 전력으로 발칸포를 수동으로 발사했다 대응 사격을 한 지 12분 후 22포 발칸 담당 병기 부사관 황도현 하사가 적의 집중 사격 속에서 포탄을 맞아 방아쇠를 잡고 안은 채 전사하였고 조천형 하사는 21포에서 응전하던 도중 집중 사격을 받던 도중 포탑 내부에 화재가 발생해 전신 화상을 입고 질식한 채 전사, M60 기관총을 맡고 있던 서후원 하사도 교전 중 684에 승조한 저격수에게 왼쪽 흉부와 양 팔 부위를 관통당하고 전사한다

 

갑판에서 소병기 사격을 담당하던 승조원들과 기관실, 통신실에 있던 승조원들이 총포탄과 7호 발사관 등의 파편에 의해 부상을 입었다 그 와중에 의무병 박동혁 사병이 5군데나 총상과 파편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승조원들의 구호를 위해 분투하던 중 서후원 중사가 684의 저격수에게 총을 맞고 쓰러지자 권기형 상병은 자신의 왼손이 고사총과 파편에 부서져 왼쪽 손가락을 못 쓰는 상태로 M60 기관총을 부여잡고 오른손으로 남은 잔탄을 등산곶 684호에 전탄 발사했다

10시 30분 ~ 10시 56분, 현장에 중원 된 대한민국 고속정 2척과 초계함 2척이 격파사격을 실시해 북한 경비정을 대파 해 북방한계선 이북으로 퇴거시켰다
11시 59분, 북한 경비정의 선제 기습사격으로 손상을 입은 대한민국 참수리 357정이 예인 도중 기관실이 침수되어 침몰하였다

 

제2 연평해전 재현 동영상:링크

 

제2 연평해전 교전 중 전사한 대한민국 장병들, 윤영하 소령, 한상국 상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

 


대한민국 해군의 대응, 참수리 385정은 즉시 대응 사격을 하려 했지만 북한 경비정이 357정에 가려 보이지 않았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나서야 북한 경비정을 공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북한 경비정은 358 정의 공격을 무시한 채 357정만은 집중 공격하였다
후방에서 한국 해군 PPC들이 급히 북상했지만 북한이 지상 기지에서 스틱스 대함 미사일을 발사할 준비를 하는 것이 감지되어 접근할 수가 없었고 인근의 공군 비행장에서 F-5, F-4 편대가 출격 명령만 기다린 채 대기를 하고 있었다

 

제2 연평해전에서 국구 피해가 컸던 것은 김대중의 교전 지침, 차단기동 도입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이전에도 경고방송-> 차단기동-> 경고사격-> 위협사격-> 격파사격 5단계로 합참의 해상 작전지침이 존재했으며 제1 연평해전에서도 똑같은 교전 지침과 차단기동으로 대승을 거둔 바 있다

 

무려 5단계에 이르던 대응기동 절차는 해군의 손실을 불러왔다. 참수리 357호도 차단기동 중 기습을 당했다. 기존에는 경고방송→시위기동→차단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이었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차단기동'이었는데 기습공격을 받기 가장 쉬웠다. 이에 국방부는 2004년 경고방송·시위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으로 3단계로 개정했다. 이는 후에 2009년 벌어진 대청해전의 승리의 바탕이 되었다

 

제2 연평해전 사건으로 대한민국 장병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당했고 고속정 6천, 초계함 2척 중에 고속정 1척이 침몰하였다 북한군은 등산곶 684 호정 파손 전사 13 명, 부상 25 명이 발생했고 경비적 2척 중에 경비정 1척이 대파당했다

2002년 6월 29일. 대한민국 서해 연평도 부근 NLL(북방한계선) 일대에서 북한 해군의 도발로 일어난 교전. 발발 시 언론사에서 '서해교전'이라고 보도했으나 국방부의 발표에 따라 제2 연평해전으로 정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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