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사건에 해당하는 글 25

  1. 일본 AV 여배우 살인사건2019.03.19
  2. 일본 스즈키 토시유키 행방불명 사건2019.03.15
  3. 일본 오사카 은행 가짜 야간금고 사건2019.03.15
  4. 일본 영구미제사건 3억엔 사건 완벽한 범죄2019.03.14
  5. 일본 이노카시라 공원 토막살인 사건2019.03.14
  6. 일본 BOAC 스튜어디스 살인사건(スチュワーデス殺人事件)2019.03.14
  7. 일본 도쿄 히노시 초등학교4학년 남자아이 사망 사건2019.03.13
  8. 일본 오사카 쿠마토리쵸 연쇄 자살사건2019.03.11
  9. 일본 SOS 조난 사건(SOS 遭難 事件)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2019.03.09
  10. 일본 미제 도쿄전력 여직원 살인사건2019.03.09
  11. 일본 시바마타 여대생 방화 살인 사건 미해결 미제사건2019.03.09
  12. 일본 미제사건 야마모토 미호 실종 사건 북한납치설?2019.03.08
  13. 일본 미제사건 무로란 여자 고교생 실종사건2019.03.07
  14. 일본 미제사건 아이치현 네 모자 살인사건2019.03.07
  15. 일본 미제사건 파일 카메이도 여성만화가 살인사건2019.03.06
  16. 일본 미제사건 나카무라 미나코 실종사건2019.03.05
  17. 한국 미제사건 인천 십정동 부부 살해사건2019.03.05
  18. 일본 미제사건 기타칸토 여자 어린이 연쇄 실종사건2019.03.04
  19. 일본 미제사건 아라시 마유미 실종사건2019.03.04
  20. 일본 미제사건 글리코 모리나가 사건 1년동안 실행된 범인의 연쇄 협박2019.03.04
  21. 14년만에 해결된 일본 여고생 살인사건2019.03.03
  22. 미해결 미제사건 나고야 임산부 엽기 살인사건2019.03.02
  23. 미제사건 일본 하치오지 슈퍼 강도살인 사건2019.03.02
  24. 일본 츠보노 온천장으로 흉가체험하러간 여성2명 실종 미제사건2019.02.28
  25. TBS 김은정 아나운서 실종 미제사건22019.02.04

일본 AV 여배우 살인사건

실화괴담/사건사고|2019. 3. 19. 21:56

AV 여배우 살인사건,일본의 아이돌 유닛minx 맴버이자 AV 여배우였던 모모이 노조미가 갑작스레 살해당한 미제 사건이다

AV 여배우 살인사건,모모이 노조미


모모이 노조미(ももい のぞみ,桃井 望)는 1980년 9월23일생, 도쿄 출신으로 초등학생 시절 나가노 현이나시로 이사 고등학교까지 현지에서 보내고 도쿄의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도쿄의 단기 대학에 진학 후 영양사를 목표로 전문 학교를 다니다가 그만둔후 2001년 AV에 데뷔하여 로리타계 배우로 인기를 얻었고 여태까지 찍은 AV가 무려 200편이 넘었다

이후 AV 배우들과 함께 MINK 아이돌 유닛을 결성해 활동을 했지만 모모이가 살해 당한후 해체를 했다


함께 죽은 사카이 히로키와는 같은 지역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었다 2002년에 다시 만나 사귀기 시작했다 사카이는 사건발생 3일전부터 모모이와 함께 집에서 지냈었고 사건 당일날 친구와 약속이 있는날이었다


2002년 10월 12일 밤,나가노 현 시오 지리시 이카와 하천 부지에서 승용차가 불타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됬다

소방대원이 출동하여 화재는 금방 진압이 되었지만 차 안에 타고 있던 남녀는 구하지 못했다

두 시신의 신원을 조회한 결과 여성은 AV배우겸 아이돌이였던 모모이 노조미였고 남성은 모모이의 애인이었다


모모이는 차량에서 8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 옆으로 누운 상태로 쓰러져 있었다 복부와 허리에는 4차례 이상 찔린 상처가 있었고 얼굴은 불에 타지 않았다 또한,소방 진압으로 인해 현장 보존이 어려워서 혼자 차에서 걸어 나와 숨졌는지 살해를 당하고 제 3자의 손에 의해서 옮겨졌는지는 판별할수 없었다

부검 결과 폐에는 담배 한개피분의 연기밖에 들어가지 않아 이미 죽은 상태에서 불에 태워진 것으로 추정 되었다

지인의 말에 의하면 사카이는 오른손잡이에 칼을 무서워 했다고 한다 경찰은 시체 사진을 사카이 가족에게 보여줬더니 두개골 정 가운데가 찌그러져거나 깨져있고 구타당한 상처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 사건을 단순히 동반자살 살해로 단정지었다 사카이가 모모이를 찌르고 등유를 뿌려 불을 붙이고 자살 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사건 정황으로 보아 누가봐도 제3자의 타살 이다


ⓐ신발이 집에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차에서 사망한 모모이와 사카이 둘다 맨발이었다 

ⓑ집에 컴퓨터가 커져 있었고 휴대폰이 사라져 있었다

ⓒ자동차 소유자였던 사카이 히로키가 뒷좌석에서 발견되었다

ⓓ사카이는 차안에서 발견되었고 여성은 차 밖에서 발견 되었다

ⓔ두명 다 사건 이후의 날 지인과 만날 약속을 하고 있었다

ⓕ등유를 뿌리고 점화 했음에도 불구하고 등유를 담은 용기가 발견되지 않았다

ⓖ두명 다 연기를 연기를 마시지 않아 불에 타 죽었을 가능성이 낮다

ⓗ모모이 노조미를 찌른 것으로 추정된 칼이 오른손잡이였지만 사카이의 왼손에 쥐어져 있었다

ⓘ불에 탄 차는 문이 전부 잠겨있었고 차의 열쇠는 차안에 있었다

ⓚ사카이는 사건 몇 달 전에 한 남성에서 80 만엔을 빌려 줬지만, 차용 증서에 적힌 이름의 인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모모이 노조미와 사카이 히로키


사건 발생후, 사카이의 모친이 아파트를 정리하다가 나온 사진 필름은 사건 당일 밤, 방안에서 찍은 두 사람의 사진이었다 사카이가 입고 있던 녹색 트레이닝복은 발견되지 않았고 트레이닝복을 입고 외출하지 않았다


사건 전, 모모이는 1년에 200작품에 출연을 했다 1주일에 3번을 촬영했고 개런티가 100만엔 이상으로 많은 돈을 벌고 있었다 그런데 사카이와 사귀기나서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사카이와 교제를 하기 위해 AV여배우를 그만둘려자 업계 관계자와 갈등이 생겼고 사건 발생 이틀 후에는 모모이 출연하기로한 촬영 일정을 취소하고

다퉜다


또한 사카이는 아파트 이웃 남성의 꾀임으로 피라미드 다단계 사업을 손을 대게 되었는데 나중에 이 남성과 본산의 연락이 두절되는 일이 있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이 남성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이 되었다 차용증에 쓰인 필적이 일치했고 사건 당일 알리바이를 위조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찰 조사결과 증거하나 찾지 못하고 사건은 미궁속에 빠졌다 사건 전 그가 빌린 80만엔의 차용증에 기입된 돈을 빌려준 사람은 그의 가족 친구들도 전혀 모르는 인물이였다


모모이 노조미 사건은 흐지부지하게 수사가 종료되고 사건은 미제사건으로 남게 된다 야쿠자,관동연합가 연관되어 있다는 주장이 있지만 밝혀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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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스즈키 토시유키 행방불명 사건

실화괴담/사건사고|2019. 3. 15. 22:08

스즈키 토시유키 행방불명 사건(鈴木俊之 失踪事件),한 어린이가 밖으로 놀라갔다오다며 나간뒤 행방 불명된 실종 사건이다


스즈키 토시유키 행방불명 사건


사건발생 1965년 7월3일 오후 4시15분경,일본 시즈오카현 이토시 우사미구,스즈키 토시유키(鈴木俊之, 당시 7세)가 밖에 놀러갔다 올게라며 나간뒤 실종되었다 늦은 시간이 되어도 아이가 돌아오지 않자 부모는 경찰에 신고를 하게 된다



이틀 후, 한 여성으로부터 이상한 전화가 각각 다른 장소에서 3번 걸려 왔다 


이틀이 지난 7월5일 낮 12시30분쯤,200미터 떨어진 인근 호텔에서 한 여성이 유킨 군 집으로 전화를 걸려왔다


집 근처에 아이가 없어진게 사실입니까?그럼 틀림 없겠네요? 라고 말한뒤 끊었다..


같은 날 오후 1시경,인근에 사는 유키 군의 친척 집에 전화가 걸려왔다 마찬가지로 여성이였다


여성:아이가 없어진게 사실인가요?

친척:예

여성:내가 납치 했다 오늘 3시까지 아타미 역 1 번 홈에서 ...

놀란 친척은 순간 수화기를 던져버렸고 수색대에 전화해 알렸다

다시 수화기를 들었지만 전화는 끊겨 있었다


같은 시간 유키 군의 아버지의 직장인 여관에 전화가 걸려왔다 또 그 여자 였다

유키 군의 아버지(이름을 불렀다) 계신가요?라고 말한뒤 전화를 끊어 버렸다


계속 이상한 전화를 받은 가족과 친척들은 경찰서에 신고를 했다

그 후 유키 군의 어머니와 경찰 2명은 아타미역에서 범인을 기다렸지만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7월6일,동네 아이들의 유키 군을 목격했다는말에 유키 군이 목격된 산으로 가서 수색 했지만 찾을수

없었다

같은 날,인근 생선 가게에 전화가 걸려왔고 또 그 여자였다 4살 난 소년이 전화를 받았다


여성:뭔데? 토시 짱?


곧바로 소년의 할머니가 전화를 받아 누구냐고 물어보자 꺼져라고 한뒤 바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이후로 그 여성으로부터 전화는 걸려 오지 않았다



사건 전 인근 강에서 유키 군이 벌레를 잡고 있었고 여기서 유기 쿤이 납치된것으로 보인다



사건 발생 후 3일째 오전 8시부터 9시반까지 유키 군 집으로 오는 국도에 검은색 대형 승용차가 왕복했으며 뒷자리있던 여자가 창문을 내리고 유키 군의 집 쪽을 보면서 주시 하고 있었다


또한 집에서 100미터 거리에 있는 유키 군의 아버지가 일하던 여관방에 휘집어 놓은 흔적이 있었다

전기는 켜져 있었고 부엌에는 요린 흔적이 남아 있었다 또한 침대 이불속에는 장난감이 있었고 립스틱이 묻은 목욕 타워이 발견되었다

이 방은 4월에 딱 1번 사용된 방이었다...


이 정황으로 보아 3번이나 같은 여성이 전화를 걸어왔는데 1번은 유키 군의 아버지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그리고 유키 군이 실종된 3일째날 한 여성이 차를 타고 유키 군의 집 쪽을 바라보고 있었고 유킨 군 아버지가 일하던 여관에 유키 군을 데리고 와서 잠시 머물렸다

유키 군을 납치한 범인은 이 여성이 맞다 그리고 왜 유키 군을 납치 했을까? 돈을 요구하지도 않은채 유키 군을 납치 했다는 말만 한뒤 전화를 끊었다


유키 군 아버지와 내연 관계였거나 옛 애인이 아니였을까? 무슨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유키 군 아버지에게 원망이 있었던게 아니였을까?

  

여관방에 범인이 여러 흔적이 있었지만 1965년에는 과학수사가 어려웠다 DNA 채취가 어려웠던 시대라 범인을 잡는데는 힘들었다 육감과 직감으로 수사를 하던 시대라 범인들이 범죄를 저지르기 쉬웠었다

인근 강에서 유키 군이 목격된 이후로 더 이상 볼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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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사카 은행 가짜 야간금고 사건

실화괴담/사건사고|2019. 3. 15. 17:37

오사카 가짜 야간금고 사건(大阪ニセ夜間金庫事件),일본 산와은행 우메다 지점에 가짜 야간금고를 설치해 고객들이 예금한 돈을 절도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다


일본 오사카 가짜 야간금고 사건


사건발생 1973년 2월25일 저녁 8시40분,일본 오사카시 키타 구 우메다 의 위치한 산와 은행 우메다 북쪽 지점의 야간금고 벽면에 안내문이 부착 됐다



'이용 고객님들 열쇠 접속 부분 고장으로 인해 금고 개폐가 불가능해졌으니 지점 전용 문에 위치한 임시 금고를 이용하시길 바랍니다

임시 금고 안내문에는 열쇠는 필요없습니다 바로 돈을 넣고 우측 레버를 아래로 끝까지누르면 영수증이 나옵니다 또한 이 금고는 임시금고이므로 영수증을 반드시 챙겨가시길 바랍니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 은행 부근에는 상가에 점포가 많았다 점포상들은 당일 번돈을 매일 은행에 예금을 했다 의심할만한 이상한 안내문이였지만 은행을 온 고객들은 은행안이라는 생각때문에 아무런 의심 없이 임시금고를 이용했다


그러는 와중에 은행 근처에서 의류 매장을 운영하는 점장(당시24세)이 매출 30만엔을 들고 은행에 찾았다 그 역시 안내문을 보고 임시 금고로 이동을 했고 돈 봉투를 넣으려는데 안에 뭔가가 콱 막혔는지 봉투가 들어가질 않았다


그러자 점장은 경비센터에 신고 했다 신고를 받고 온 은행 경비원과 은행 직원이 왔는데 뭔가 이상 하다는 걸 알았다 이들은 은행측으로부터 야간금고가 고장났고 임시 금고를 설치했다는 말을 전혀 들은 바가 없었기 때문에 곧바로 경찰에 신고 했다



조사 결과 임시 금고는 견고하게 만들어진 가짜 였다 보통 금고와 달리 합판에 스테인리스 판을 붙이고 테투리는 알루미늄 섀시를 사용하고 간판 뒤에는 수은 전지를 설치해서 빛나게 했다 얼핏 봐서는 금속 재질로 만들어진것 처럼 보였다

게다가 금고의 크기는 은행 금고의 크기와 일치했다 너무 완벽하게 만들어진 금고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눈치를 못챘다 더구나 의류매장 점장의 돈 봉투가 들어가지 않은 것도 금고를 너무 잘 만들었기 때문이다



30분사이, 가짜 금고안에는 2.576만엔이 들어있었고 콱 차있었다 그래서 의류매장 점장이 돈 봉투를 넣으려고했으나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가짜 금고를 완벽하게 만들어지만 돈을 비우는걸 계산하지 않았다

적당한 때가 되면 현금 수송 담당자들이 와서 기계안의 현금을 빼서 비워주기 때문이다

 

현장에는 범인이 남긴 증거물이 많아서 범인을 금방 잡을거라고 생각했다 경찰은 가짜 금고가 만들어진 경로가 어디인지를 집중 수사 했다

 

범인은 가짜 금고 설치는 4분만에 이루어졌다 오후 8시 40분, 25명의 사람들이 금고를 이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진짜 금고의 열쇠 구멍에 철 조각을 삽입한뒤 간판을 들고 다른 쪽에서 가짜 금고를 설치 했다

설치가 끝난후 바로 가짜 금고를 이용할려는 고객이 들어온것이다 절묘한 타이밍이였다


가짜 금고를 설치후 적당한 시간을 가늠해 돈을 회수에 오려고 1층 비상 계단에 담배를 피면서 대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의류매장 점장의 신고로 은행 경비원과 은행직원이 오게되자 범인들은 돈도 못 챙겨가고 황급히 도망 갔다

1층 비상 계단에는 담배 꽁초,호테이 오사카 다방 성냥갑,작업복,포대자루가 발견 되었다


한달 전인 1월30일,고베 이쿠타 구내의 슈퍼에서 야간금고 플라스틱 플레이트판을 주문 했었고 금고의 본체가 된 합판은 같은시기 이타미 시내의 건축 자재 상점에서 구입 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고의 설치와 돈회수를 생각하면 범인은 3명이상이 유력 했다

그리고 범인은 간판에 「猶」「儘」「成可く」など、旧漢字や旧仮名遣い 옛 한자를 사용한것으로 보아 나이대는 중년 이상으로 추측 했다

가짜 금고에는 범인것으로 보이는 지문이 발견되었지만 대조 결과 신원이 파악 되지 않았다


사건 발생후 3개월,경찰로 시민의 제보가 있었다 두 형제가 범인이라는 것이다

그 형제는 인근 도시에 살고 나이는 30~40세로 화물 관계 회사를 경영하고 있었고 잘 되지 않았다 형제는 사업하기전 현장 인근 상가와 판금 도장 관련일을 했었고 사건 직전에 금전 문제를 겪었다

두 형제가 의심스러워 제보를 했다는 지인의 신고였다

이후 경찰은 두 형제를 조사했지만 관련성을 발견하지 못하고 흐지부지 하게 끝났다 


에필로그?


가짜 야간금고 사건이 벌어진후 2개월이 지난 1973년 5월1일, 오사카 다이마루 백화점에 협박장이 날아왔다

3,000만엔의 현금을 내놓을것 지시에 불응할 경우 3일뒤 소고 백화점에 사건 하나가 터질거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다이마루 백화점 측은 아무일도 안 일어나겠지 하면서 거절을 했다


사건발생 5월4일, 소고 백화점 매트 판매장에서 방화 사건이 발생 했다 결국 다이마루 백화점 측은 직원에게 3,000만엔이 든 가방을 주고선 경찰과 함께 범인이 지정한 장소로 이동 했다

지하 주차장에 주차된 한 승용차를 지목해 드렁크 안에다 돈가방을 넣으라는 지시를 받은후 백화점 직원이 돈가방을 드렁크에 넣었다

그런데 범인과의 연락이 끊어졌고 경찰은 급히 차쪽으로 갔으나 아무도 없었고 드렁크에 있던 3,000만엔이 든 가방도 사라져 버렸다

차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돈가방만 없어진 것이다


그 이유를 알아보니 범인들은 경찰들이 쫓아올것을 대비해서 차 트렁크에다가 트릭을 설치해 두었다

차 트렁크가 닫히는 순간 돈가방은 땅바닥에 떨어지도록 해두었다 그리고 돈가방이 떨어짐과 동시에 낚싯줄에 걸리게 해서 잡히지 않으면서도 돈가방을 안전하게 가로챌수 있던 것이다

그런데 뜻밖의 사실이 밝혀졌다 3,000만엔 돈가방이 사라지게 한 트릭에 사용된 장치가 약 2개월전 산와 은행에서 가짜 금고를 만들때 쓰였던 합판과 동일한 재질이었다는 것이다


이 사건만이 아니였다 1984년 ~1985년까지 1년동안, 교토와 한신 일대에서 괴인 21면상이라고 자칭했던 범인들이 글리코,모리나가,마루다이등 식품 회사들을 상대로 협박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을 글리코 모리나가 사건으로 불린다 이 범인들은 모리나가 제과에 1억엔을 요구하면서 맨홀 위에 둔 옷상자를 통해서 현금을 강탈하려는 트릭이 가짜 야간금고 사건의 트릭과 비슷했다


모두 관서 지방이라는 점을 토대로 두 사건 모두 동일범의 소행일 가능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범인은 체포되지 않았다  


범인은 실패를 했지만 성공도 했다 그리고 잡히지 않았다 7 년 후인 1980년에 시효가 성립되었고 미제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글 출처: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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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구미제사건 3억엔 사건 완벽한 범죄

실화괴담/사건사고|2019. 3. 14. 22:20

일본 3억엔 사건(三億円事件(三億円強奪事件),일본 도쿄도 휴츄시에서 발생한 절도 사건으로 3억엔을 강탈한 일본에서 일어난 희대의 현금 절도 사건이다 


일본 3억 엔 사건


아직까지 범인히 잡히지 않은 영구 미제사건이다 범인의 완벽한 계획에 경찰들은 속수 무책으로 당한 사건이기도 하다..


사건발생 1968년 12월10일, 비가 많이 내리던날 도쿄 코쿠분지에 있는 일본신탁은행 코쿠분지점에서 도쿄 후추에 위치한 도쿄 시바우라 전기(현재 도시바)후츄 공장으로 현금 3억엔이 들은 가방 3개를 실은 현금 수송차량이 출발했다 후츄 공장으로 간 이유는 직원들의 연말보너스와 사무비를 지급할 목적 이었다


수소차량은 1964년형 닛산 세드릭 일반 세단이였고 일본신탁은행 코쿠분지점 은행직원 3명이 타고 있었다

오전 9시 30분,휴츄 공장에 도착할 무렵 뒤에서 오토바이를 타고온 경찰이 접근해왔다

경찰은 손을 내밀어 정차하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수송차량은 영문도 모른채 길가에 차를 정차를 했다


코쿠분지점 은행직원:무슨 일이시죠?


경찰:일본신탁은행 스가모지점 지점장의 집이 폭파되었습니다 이 수송차량에도 다이너마이트가 설치되었다는 연락이 와서 수송차량을 조사해봐야 합니다


코쿠분지점 은행직원:출발 당시 수소차량의 외부와 내부를 모두 검사를 했기 때문에 이상이 없습니다


경찰:그래도 혹시 모르니 차량 하부를 검사해봐야겠습니다

.....잠시후

경찰:다이너마이트다 곧 폭발 합니다 빨리 도망치세요!

실제 범인이 놓고간 오토바이


코쿠분지점 은행직원들을 모두 멀리 대피시킨후 수소 차량을 운전하고 경찰 오토바이를 그자리에 남겨둔채 도주했다


이때 코쿠분지점 은행직원들은 자신들을 구하려고 폭탄이 장착된 수소차량을 몰고 사라진것으로 생각 했었다 하지만 몇초후 코쿠분지점 은행직원들은 경찰이 타고온 오토바이를 보고선 경찰이 놓고간 오토바이가 가짜라는걸 알았다


경찰 오토바이는 혼다에서 만들었다 하지만 범인이 타고온 오토바이는 야마하꺼였던것이다


도쿄 전역에 경찰 만명의 인원이 투입되 대대적인 검문검색을 했으나 범인의 흔적도 못찼고 놓치고 말았다


범인이 보낸 실제 협박장


사건발생전 1968년 12월6일,일본 신탁은행 코쿠분지 지점장 앞으로 협박장이 배달되었다 다음날 오후5시까지 현금 300만엔을 지정된 장소에 여성 직원이 가져오지 않으면 지점장의 집을 폭파하겠다는 내용이였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12월7일 오후 5시, 경찰 50명이 잠복해 기다리고 있었지만 범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범인이 버리고간 차량


사건 당일, 범인은 치밀할 계획을 세웠다 현금 수송차량을 탈취 하기 좋은 장소에다가 경찰 오토바이를 숨겨 놓았다

범인은 가짜 경찰복을 입고 대기를 탔다가 현금 수송차량이 지나가자 가짜 경찰 오토바이를 타고 수소 차량을 쫓아 갔다 수소 차량을 따라 붙은후 짜여진 각본대로 코쿠분지점 은행직원들을 현혹 시켜서 수소차량을 탈취를 해서 도주를 했다

이후 현금 3억엔을 원래 가져온 차량에 옮기고 탈취한 차량을 숲에다 유기 시킨뒤 도주를 했고 경찰의 대대적인 검문이 있었지만 걸리지 않고 무사히 빠져나갈수 있었던 것이다...


범인이 흘리고간 실제 물품


범인은 놓쳐지만 범인이 흘리고간 물품이 무려 120여개나 되서 범인을 잡을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무의미한 증거품이였다 경찰이 얻은 유력한 단서는 수송차량과 오토바이였지만 뚜렷한 단서 하나 나오지 않았다

헌데 경찰은 오토바이에서 범인의 지문을 채취를 했지만 중요한게 아니라며 배제를 했다 왜 그랬을까? 경찰도 공범이였던걸까?


실제 범인이 버리고간 코롤라 차량과 현금가방



사건 발생 4개월후, 코쿠분지 근처 고가네이의 주차장에서 범인이 탔었던 코롤라 차량을 발견했다 코롤라는 시트에 덮혀있었고 차 안에는 빈 현금 가방 3개가 있었다 코롤라는 도난 차량이었다

A군과 몽타주


몇일후 경찰은 코쿠분지에 살았던 19살의 소년 A를 유력 용의자로 지목을 했다 불량아의 리더였던 A는 자주 차량을 훔치던 상습 절도범이었다


사건 발생전, A는 학교나 은행,현금 수소차량을 털자고 제안한 사실이 있었다 정황상 A는 운전을 잘했으며 지리에 밝았다 또한 부친이 오토바이 경찰이라 경찰 위장 하는데 유리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어느 날 A는 집에서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을 했다 왜 자살을 했을까? 의문점이다....


A가 죽은후 현금 수소차량에 타고 있었던 은행 직원들의 토대로 몽타주를 만들어야 했지만 1년전에 죽은 A의 사진을 몽타주로 사용하는 실수를 하게 된다

12월21일, 부정확한 몽타주를 일본 일대에 배포했고 사건은 더욱 미궁에 빠졌다 A는 3억엔 사건의 범인이 아니였다 협박장이 보내지던 날 알리바이가 있었고 협박장에 검출된 혈액형과 일치하지 않았다

또한 당시 범인은 오토바이를 몰면서 한쪽 발을 지면에 끌면서 끈었다는 것이다 발이 지면에 닿을려면 최소 키가 170cm되어야 한다 하지만 A의 키는 165cm에 불과 했다


이후 경찰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탈취된 현금 중 유일하게 알고 있던 500엔짜리 지폐의 일련번호 2,000개를 공개했으나 범인을 잡는데 실패 했다

7년간 10억엔의 예산을 부으면 17만명의 경찰을 투입하고 11만명의 용의자를 지목했으나 수사에는 진적이 없었다 



31년이 지난 1999년,한 여성이 과거의 일을 일기 형식으로 작성해 놓은 워드프로세서 파일이 유출됐다


워드프로세서 파일은 신주쿠 어느 가게의 단골손님인 남자가 가게 사장이었던 여성의 컴퓨터에 문제의 파일을 보고는 몰래 훔친 것이었다


여성의 일기는 3억엔 사건의 전말이었다 이후 남자는 워드프로세서 파일을 출판사에 넘겼고 그 해 서적으로 나오면서 화제가 되었다


나는 내가 3억엔 사건의 실행범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한다고 표현한 것은 그때 나 자신에게 스스로의 의사가 있었는지 분명치 않아서이다

복잡한 가정사로 인해 친척집을 전전하던 여고생에게 있어 신주쿠의 재즈바 재즈 빌리지는 유일한 마음의 위안이었다

그곳은 떨어져 살던 오빠가 매일 같이 친구들과 상주하던 곳이었다


당시 극렬한 학생운동 전개와 시대의 파도를 비웃으며 오빠와 친구들은 시끄러운 재즈에 몸을 던졌다

나는 그곳으로 처음 오빠를 보러 간 날 오빠의 친구 무리에서 키시를 만났다

도쿄대생인 키시는 스마트한 데다 무언가 오빠의 친구 무리와는 다른 분위기의 사람이었다


곧 나는 오빠의 친구 무리 사이로 녹아들었고 키시와도 점차 친밀해졌다

운전을 해보고 싶어 하던 나에게 키시는 오토바이와 차량 운전법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오빠와 오빠의 친구들 모르게 나랑 키시는 비밀스레 가까워졌다


어느 날 키시가 나에게 부탁할 것이 있다고 했다 키시는 나에게밖에 부탁할수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고

나는 내가 필요하다는 말에 부탁을 들어주겠노라고 승낙했다 


키시의 부탁이란 도쿄 시바우라 전기 후츄 공장으로 향하는 현금 수소차량을 빼앗는 것이었다

키시의 주도면밀한 계획에 따라 나는 몇 달 동안이나 키시와 함께 예행연습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키시와 범죄를 모의하던 그때가 나에게 있어선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1968년 12월10일,나는 키시의 계획에 따라 뒷머리를 질끈 감아올리고 현장으로 향한 자리에서 실행범이 되어 현금 수소차량을 빼았았다

키시는 계획이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일이 생기면 즉시 중단하고 현장에서 벗어나라고 강조했지만

폭우가 쏟아지고 커버 시트가 오토바이 뒤에 걸리면서 예정 시간보다 늦게 출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간신히 현금 수소차량을 따라 잡을수 있었다


그렇게 계획대로 현금 수송차량을 빼앗은 뒤 약속지점에 차를 타고 대기중이던 키시를 만났고 그곳에서 키시에게 현금 가방을 넘기고 나는 미리 준비된 도난차를 몰고 지정된 곳에 유폐시켰다


이후 키시와 나는 얼마간 평소처럼 만나 이야기를 하고 시간을 보냈지만 키시는 빼앗은 현금에 대해 말을 꺼내지 않았고 나 또한 키시에게 묻지 않았다

거물 정치가의 서자였던 키시는 아마 사건이 범국민적인 관심거리가 되었을 때 스스로 범인임을 자수하여 희생함으로써 내각에 쏟아질 비난을 투쟁의 디딤돌로 만들려던 것 같다

아니면 단순히 버림받은 아버지로부터 복수를 꿈꿨던 것이거나 말이다 키시는 사건으로 세간이 시끄러워져도 나는 여자이고 무현허이니 걱정하지 말고 수험공부에 매진하라는 말을 해주었다 키시의 말은 맞았다


더불어 키시는 만일을 대비해 빌려두었던 집의 열쇠를 쥐여주곤 나에게 수험이 끝나면 그곳에서 살아도 된다는 말도 해주었다 나는 그때 그곳에서 키시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말했고 키시는 나에게 되도록 빨리 돌아오겠다고 대답했다


1969년,수험이 끝나고서 나는 키시가 구한 집에서 키시를 기다렸다

그러나 키시는 반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키시가 오기를 기다리는 것에도 지쳐갈 때 즈음 나는 처음부터 집안에 있던 어느 책에서 키시의 메모를 발견했다

책 본문 사이로 마치 낙서처럼 적혀있던 그 메모로 나는 키시가 말하지 않았던 그의 마음을 알수 있었다


소녀를 만났다 맑은 눈을 한 소녀는 올곧게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사랑에 빠졌다

아마 첫눈에 반했다

하지만 그걸 전할수는 없다

나는 그녀의 눈을 더럽히는 것밖에는 할 수가 없으니까.


내 오빠인 리키는 1990년 46세로 죽어버렸다

그리고 2년 후에는 재즈 빌리지 무리 중 작가 지망생으로 오빠와 가장 친했던 켄지도 오바를 뒤따르듯 4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키시는..키시는 지금도 여전히 실종상태다 키시는 내 첫사랑이다..


여성의 일기에는 지금까지 자신이 3억엔 사건의 범인이라고 주장하던 자들과는 달랐다 범행 전,범행 당시,범행 후의 경위들을 아주 세세하게 기록 했다


사건이 벌어지던 현장 부근에 장시간 정차 중인 차량이 목격되었다 차량에는 한 남성이 타고 있었다 이 차량은 범인이 수송차량에서 갈아탔던 차량과 나란히 목격되었다


경찰 오토바이를 타고 현금 수송차량을 탈취한 범인 얼굴

사건 직후 경찰은 검문 대상을 남성으로 제한했었다 범인이 절도 했던 또 다른 차량은 낫산 스카이라인 2000GT에서는 재즈바에서 유통되는 성냥과 여성의 귀걸이가 발견됐다

수송차량에서 다른 차량으로 갈아타던 범인을 목격한 유일한 목격자는 차량이 너무 빨리 달렸고 비가 마니 쏟아져 범인을 자세히 보지 못했다고 한다 유일하게 본것은 범인의 뒷머리가 장발이었다는 증언이었다


경찰의 지목했던 A군과 이 여성의 애인이였던 키시가 동일인물이 아니였을까?

 

A군이 3억엔 수소차량을 탈튀한 범인이라고 생각한 아버지는 불명예를 피하고자 아들을 독살시킨것으로 보인다는 추측이 있었다


사건 당시. 범인이 수소차량에서 다른 차량과 동일한 몸델의 차량을 현장 부근에서 홀로 운전 중이었던 여성의 사진이다 당시 운집한 경찰을 찍던 시민에 의해 찍힌 사진이다 


이 사진과 일기장,A군의 자살?범인은 A군(키시)와 리키의 여동생이 아니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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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이노카시라 공원 토막살인 사건

실화괴담/사건사고|2019. 3. 14. 15:47

이노카시라 공원 토막살인 사건(井の頭公園バラバラ殺人事件(いのかしらこうえんバラバラさつじんじけん),일본 도쿄 이노가시라 공원에서 일어난 잔혹한 살인사건이다 범인은 잡히지 않아 영구 미제사건 이 되었다


이노카시라 공원 토막살인 사건


1994년 4월 23일,오전 도쿄도 미타카시에있는 이노 카시 라온시 공원의 쓰레기통 비닐 봉투에 들어간 인간의 발목이 버려져있는 것을 우연히 청소원 여성(당시59세)이 발견했다

처음에는 생선이나 돼지고기라고 생각하고 고양이 먹이를 줄려고 열어볼려다가 사람의 다리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신고를 받고 온 경찰은 공원 일대를 수색했고 총 27개에 절단 된 팔다리 몸통의 일부가 봉투에 담겨져 있었고 7곳의 쓰레기통에서 발견되었다

모든 신체 부위가 반투명한 봉투에 이중으로 싸여져 있었고 머리와 일부의 몸통은 발견되지 않았다 손발의 지문은 모두 깍여져 있었지만 남아 있던 지문과 DNA를 발견해 피해자의 신원 파악을 알아냈다


피해자는 공원 근처에 사는 1급 건축사 '카와무라 세이치'(川村誠一, 당시 35세)로 밝혀졌다


당시 발견된 쓰레기통의 시체들


시신은 관절이나 장기등을 무시하고 전기 톱으로 20cm 간격으로 정교하게 절단되었다 이것은 공원의 쓰레기통 투입구 크기인 세로 20cm, 가로 30cm로 거의 일치 했다

또한, 절단된 시체는 혈액 한 방울 남김 없이 빼갔다 혈액 없이 시체를 절단하려면 의학지식이 필요했다 시체는 3가지 방법으로 절단 되었고 범인은 한명이 아니 2,3명이상이라는 추측이다


발견되지 않은 머리와 일부 몸은 어디로 갔을까? 일각에서는 시체 토막들이 4월23일 이전에 버려져 쓰레기차에

실려 쓰레기 매립지에 이미 버러져 찾을수 없게 되었다는 추측이다


피해자의 발걸음과 목격담


4월21일 오전 7시30분,직장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4월21일 오전 8시30분,미나토 구 신바시의 건축 사무소에 출근

4월21일 낮,아내에게 술자리가 있어 늦게 간다고 전화

4월21일 오후 5시 30분,옛 동료들과 술자리에 참가

4월21일 오후 11시30분,신주쿠 역에서 옛 동료2명과 헤어졌다

4월22일 오전 0시10분,집근처역인 키치죠지 역 도착

4월22일 오전 0시15분,키치죠지 역에서 2명의 남자에게 일방적으로 맞고 있는것을 봤다는 여성의 증언

4월22일 오전 0시~1시경,카와무라 세이치 자택근처에서 비명소리를 들었다는 주민 사람들 증언

4월22일 오전 9시경,이노카시라공원 2km 거리에 있는 스기나미구 구가야마 근처 편의점에서

대량의 쓰레기 봉투를 구입하는 남자 2명 목격 반투명 쓰레기 봉투 10팩(총100매)를 구입했으며

1명은 30세 전후로 티셔츠를 입었고 다른 1명은 50세 전후에 검은 작업복을 입었다

쓰레기 봉투를 사면서 두리번 두리번 주위를 둘러보는 이상한 행동을 했다는 점장의 증언이였다


4월22일 저녁,남편 카와무라 세이치가 돌아 오지 않자 아내는 직장에 전화를 걸었지만 출근하지 않았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그동안 무단 외박,무단 결근을 하지 않았던 남편이기에 아내는 경찰에 신고 하게 된다


4월23일 오전 4시경,이노카시라공원내에서 쓰레기 봉투를 가진 의심스러운 두 사람이 봤다는 목격자가

있었다 두 사람은 주위를 둘러보면서 의심스러운 행동을 하고 있었다

1명은 정장을 또 다른 1명은 점퍼를 입었고 30세전후 165cm키에 점퍼를 입은 남자가 비닐 봉투를 가지고 있

었다고 한다 그런데 의심스러운 남자는 2명이 아니였다 공원근처에 2명의 남자도 있었다는 증언이다


4월23일 오전 11시,이노카시라 공원에서 청소를 하던 여성 미화원에 의해 남자의 발목이 발견됬다

공원 일대를 수색한 결과 7곳의 쓰레기통에서 총 23봉지에 토막난 신체 부위가 담겨져 있었다


5월11일 정오,공원 근처에서 오른쪽 어깨의 일부인 뼈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발견 되었지만

경찰의 확인결과 돼지 뼈로 판정 났다


피해자 카와무라 세이치


피해자 남성은 온후한 성격이였고 부부사이도 좋았다 1958년 도쿄 출생 지역의초등학교,중학교를 졸업하고 도립 아키 고등학교는 건축과를 나왔다 성인이 된후 다카다 노바 바의 건축 사무소에서 일하면서 자격증을 따게 되었다

그후 초등학교 시절부터 알게된 아내 미요코와 결혼을 했고 아내와 아들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런데 경찰은 손바닥 지문을 의도적으로 깍아 있던것으로 보아 아는사이,아주 가까운 인물이 범인이라고 추측 했다 그리하여 친한 사람들,친구,친척,직장 동료등 모두 조사를 했지만 다 알리바이가 있었다

일각에서는 신흥 종교단체에 의해 살해 당했을거라는 주장이 있다 두 부부는 신흥 종교에 빠져 있었다 어느 날 아내가 신흥 종교에서 탈퇴를 하자 남편을 살해 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2009년4월23일 오전0시, 공소 시효가 성립되었다 범인을 찾을만한 단서와 증거가 없어서 수사의 진적이 없어서 수사가 중단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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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BOAC 스튜어디스 살인사건(スチュワーデス殺人事件)

실화괴담/사건사고|2019. 3. 14. 12:49

BOAC 스튜어디스 살인사건(BOACスチュワーデス殺人事件),영국 해외 항공 (BOAC 현 영국 항공 ) 일본인 여성 객실 승무원 (스튜어디스)이 강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미제사건이다



사건 발생 1959년 (쇼와 34 년) 3월 10일 오전 7시 40분, 도쿄도 스기 나미 구에 있는 젠푸쿠지 강(善福寺川) 하류에서 일본인 여성 승무원(당시 27세)의 시체가 발견 되었다 시체는 옷을 입은 상태로 하늘을 바라보고 물 위에 떠 있었다


처음에는 자살로 수사를 마무리 할려고 했으나 3월11일 게이오기주쿠대학에서 부검을 한 결과 목이 졸려 죽은 교살로 드러났다 또한 피해자의 몸과 팬티에서 O형,A형,AB형 남자의 정액이 발견 됐다


피해자 여성은 타케가와 토모코(武川知子)로 1958년 12월, BOAC 현 영국 항공에 취직 했으며 일본인 여성 9명중 1명이였다

이 사건의 전후에 BOAC 항공의 다른 스튜어디스가 돈이나 마약 등의 밀수에 관여 한 사건이 발각 되었다


국제 조직적인 밀수 루트에 관한 모략 사건이 아닌가하는 설도있다

피해자 여성의 행적은 3월8일 오후3시 세타가야에 있는 스튜어디스 숙소에서 외출한것이 마지막이였다

동료들에게 코마고메에 있는 숙부 다카하시 고로의 생일잔치에 초대받았다고 말한뒤 외출을 했다

그러나 확인결과 그녀는 숙부의 생일잔치를 갔던게 아니였다 그 핑계로 남성을 만났던게 아니랴는 경찰의

주장이였다


루이즈 벨메르쉬


어느 날 수사 도중에 유력한 용의자가 지목이 되었다 벨기에 신부 루이즈 벨메르쉬(당시 38세)는 벨기에 가톨릭 신부였던 그는 1948년 신학생 신분으로 일본에 와서 1953년 사제서품을 받았다 이후 돈 보스코사에 배속되어 재무담당으로 일해 왔다


그런데 벨메르쉬는 좋지 않은 소문이 있었다 살레시오 수도회 소속 유치원의보모,간호사들과 연애를 하거나 성관계를 한다는 이야기 였다 타케가와 토모코가 죽기전 살레시오 수도회 산하의 성 오델리아 유치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면서 벨메르쉬와 만나다는게 확인 됐다


벨메르쉬를 집중 수사를 하던중 하라주쿠 호텔에서 벨메르쉬와 피해자 여성 토모코가 함께 들어간것을 목격자 제보가 들어왔다

3월10일 오전 5시, 토모코의 시신이 발견된 날, 센푸쿠지 강 인근에 살던 주부가 밖에서 차 소리가 나서 확인해보니 하얀색 승용차가 센쿠지강 옆 둑길로 가고 있다는것을 제보 했다


이후 주부에게 차량 카탈로그를 보여 주자 하얀색 르노 차량을 지목했다 벨메르쉬의 승용차가 하얀색 르노 였다 동네 주민들에게 물어보자 한결같이 하얀색 르노 차량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벨메르쉬가 범인으로 유력 해지자 당대 일본의 유명한 형사 히라츠카 하치베가 심문을 맡기로 했다

토모코의 성기에서 발견한 정액 혈액형이 O형 남자인것을 확인했던 경찰은 벨메르쉬의 타액을 채취 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벨메르쉬는 경찰이 권하는 커피와 주스등 입에 대지 않았으며 화장실에도 가지 않았다 

5월 11일,12일,13일,20일,21일 총 5회에 걸쳐 30여 시간동안 심문을 했다 벨메르쉬는 토모코와의 성관계를 부인했으며 알리바이가 있다고 항변했다

하지만 3월9일 오후9시에서 12시 사이의 알리바이를 추궁하자 알리바이에 대한 답변을 하지 못했고 하라주쿠 호텔에서 투숙한것에 대해 완강하게 부인하다가 경찰이 증거를 보여주자 쉬러갔을뿐이라고 진술을 번복했다


그러는 와중에 경찰은 벨메르쉬의 혈액을 알아내고 정액의 혈액형과 일치함을 밝혀내 구속영장을 청구 할려고 해으나 6월11일 오후7시30분, 벨메르쉬는 로마 본부로 전속되었다면서 하네다 공항에 에어 프랑스 비행기를 타고 로마로 떠났다

이후로 수사는 더 이상 진행이 되지 않았고 사건은 묻히고 말았다


시체가 발견된 장소


토모코는 왜 죽었을까? 일각에서는 돈 보스코사가 토모코 살인에 개입했다는 추정이 있었다

살레시오 수도회 소속 유치원에서 일하던 토모코가 갑자기 BOAC의 스튜어디스가 된것이 이상했다 20세에서 25세로 연령제한 규정이 있었는데 토모코는 27살로 BOAC의 스튜어디스가 되기 어려웠다 또한 시험성적도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뽑현던데 의혹을 사게 되었다

런던 본사에서 교육을 받았던 토모코는 단독 행동이 많았고 편지를 들고 아침 일찍 어디론가 나가곤 했다 또한 항상 초초하고 무서워 안절 부절 못하는 모습을 많이 봐 왔다는 동료들의 증언이었다


당시 돈 보스코사는 카톨릭 포교를 위해 위법을 서슴치 않았다 부당이득,암시장,자금밀수,불법자금 수송등을 해왔다 심지어 BOAC는 돈 보스코사의 자금 밀수로였다 여러 정황을 보아 돈 보스코사의 재정 담당이였던 벨메르쉬의 애인 토모코를  BOAC의 스튜어디스로 들어가게 한뒤 달러르르 밀수하는 운반책을 맡기려고 한게 아니냐는 주장이 있다

그러다가 토모코는 반황을 했거나 밀수한 달러는 빼돌리려는 모습이 포착되 그녀를 살해한게 아니냐는 추측이 있었다


타케가와 토모코를 죽인 범인으로 루이즈 벨메르쉬가 확실했지만 체포도 못한채 사건은 미제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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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 히노시 초등학교4학년 남자아이 사망 사건

실화괴담/사건사고|2019. 3. 13. 19:18

히노시 초등학교4학년 남자아이 사망 사건(東京都日野市の小学4年生の首吊り事件は),일본 도쿄 히노시의 타카하타 산에서 초등학생 4학년 (당시 10세) 남자 아이의 손.발이 묶인 상태로 나무에 목을 메달아 사망한 소년이 발견되었다 자살로 판정을 지었지만 자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의문점이 많은 사건이였다



2015년10월25일, 사건이 일어나기전 소년은 오전 11시경 어머니에게 놀러갔다온다면서 외출을 했다 그런데 늦은 시간까지 돌아오지 않자 어머니는 경찰에 신고를 했다


발견된 장소


오후 8시경, 일본 도쿄 히노시의 산에서 목을 메달아 죽은 소년이 발견되었다



소년의 옷과 신발은 나무 근처에 놓여져 있었고 목과 양발 양손이 비닐끈으로 묶어져 있는 상태로 경사진 부분에 옆으로 눕혀져 있었다

눈에 띄는 외상은 없었고 저항 같은 흔적이 없었다 또한 현장에서 타인의 지문,DNA등 어떠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아 경찰은 자살로 판정 했다


죽은 남자 아이는 특수 대안학교(東京賢治シュタイナー学校)에 다니고 있었다 이 학교는 20세기 초 오스트리아의 루돌프 슈타이너가 만든 교칙으로 운영되는 학교다

구애받는 시간표,교과서가 없었고 자유를 중시하는 교육을 했고 한 학년은 10명 정도의 정원이라 이지메나 괴롭힘이 없었어 다들 친하게 지냈다

또한 인터넷,게임,TV을 하지 않았다 비유하자면 사이비 종교 같았다


경찰이 자살로 단정지은 이유는 손과 발이 묶여있었으나 매듭의 강도가 느슨했고 시체에 외상이 없으며 저항한흔적이 없었다 또한 옷과 신발이 강제로 벗겨진 흔적이 없었다


10살 남자아이가 손과 발을 묶고 경사진 나무에 목을 메달아 자살할 생각을 가졌다는게 의문점이다 또한 날씨가 상당히 추웠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옷과 신발을 다 벗고 자살했다는점이 말도 안된다는 이야기다   


일각에서는 학교 친구들이 아닌 타 학교에 다니는 동네 아이들의 짓이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과는 친하게 지내고 별문제가 없어겠지만 동네 아이들은 세상과 동떨어진 이상한 아이로 취급을 당해 이지메를 당했다는 주장이 있다





동네아이들은 소년에 손과발 그리고 목을 비닐끈으로 묶어서 나무에 묶었다 그리고 소년에게 경사진곳으로 내려가게 한뒤 고통을 당하고 있는 소년을 지켜본후 소년가 죽자 급히 도망쳤을거라는 주장이다


다카하타산은 등산객들이 많은 산으로 알려져 있다 어느산이나 마찬가지로 밤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지매를 당한 시간이 늦은 저녁이라며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사건은 자살로 종결 되었지만 여러 의문점이 있는 미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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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사카 쿠마토리쵸 연쇄 자살사건

실화괴담/사건사고|2019. 3. 11. 19:27

일본 쿠마토리쵸 연쇄 자살사건(쿠마토리쵸 연쇄),일본 오사카 부 구마 토리정에서 17세에서 22세의 젊은 남녀들의 잇다른 연쇄 자살사건이지만 원인모를 죽음도 있기 때문에 미스테리한 미제사건이다


일본 쿠마토리쵸 연쇄 자살사건


현재까지도 밝혀지지 않은 미해결 사건이다 의문점이 너무 많은 기묘한 사건이다


소년 A군이 자살한곳


첫번째 죽음


1992년 6월 4일 목요일 오전 3시경, 소년 A군(당시 17세)은 집 근처의 양파 오두막에서 목을 매고 자살 했다


친구2명의 이름과 10만엔, 빚을 갚고 싶어라는 메모를 제외하고는 유서가 없었다 주변사람들은 왜 그가 자살했는지 전혀모른다고 했다


17세 A군은, 중3떄는 학교에 잘 나오지 않는 학생이였고 파칭코의 자주 출입을 했다 동급생에 따르면 친구 B군보다 거칠고 그냥 막 덤비는 스타일이였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에 미용사 전문학교에 입학을 했지만

1년도 되지 않은 기간에 그만두고 백수[무직]생활을 했다 이후 친구 B군,C군들과 오토바이트 타고 다녔고 폭주족을 결성해 신나를 흡입 하면서 지내왔다


소년 B군이 자살한곳


두번째 죽음


1992년 6월 10일 수요일, 소년 B군(당시 18세)은 예전에 자신이 살던 집 헛간에서 목을 매고 자살했다


유서는 없었다 B군, C군, E군 3명은 이전부터 지인이나 가족에게 "차에 쫓기고있다"고 말했다. B군은 "백색 크라운에 쫓기고있다"고

어머니에게 말을 했었고 어머니가 C군에게 물어보자 여러번 그런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E양은 친구들에게 검은 차가 쫓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18세 B군은, 건축일을 했으며 쿠마토리쵸 일대 불량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친구 A군,C군과 시작한 폭주족 조직에서 리더 였다 당신 임신시킨 여자가 있었고 결혼해서 새로운곳에서 살려고 준비중이였다

친구 A군의 장례식을 치른후 남은 친구들에게 우리 이제 제대로된 생활을 하면서 살아나가자고 격려를 했지만 그도 며칠후 자살 하게 된다


소년 C군이 자살한곳



세번째 죽음


1992년 6월17일 수요일,소년 C군(당시 18세)은 농기구 오두막에서 목을 매고 자살 했다


두손이 뒤로 묶인 채 목을 매달아 죽어 있었다 옷을 깨끗했고 뒤로 묶인 방법은 혼자서도 할수 있는 방법이였고 자살을 못할까봐 일루버 뒤로 묶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자살하려는 사람이 손을 묶을 이유가 없다며 항의를 했다


18세 C군은, 고치현 출신으로 유명한 사립 고등학교에 입학해 야구를 했지만 중퇴후 B군과 친하게 지내다가 건설회사에 다닌후 미에현에서 여관 종업원 일을 하다가 친구 B군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쿠마토리쵸로 돌아왔다

이후 이전 사귀던 여성 (당시 17 세)를 만나고 싶다"고 생각 두 명의 친구를 데리고 여자를 만나러 갔다 그 여성과 만난후 곧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친구에게 밧줄 있어?라고 한뒤 6시간후 자살 했다


C군도 B친구처럼 정체를 알수없는 차가 뒤쫓아왔다는 얘기를 했었다


D군이 자살한곳



네번째 죽음


1992년 6월25일 목요일,D군(당시 22세)은 동네 숲 나무에 목을 매고 자살 했다


유서가 없었고 목을 매달아 죽은 나뭇 가지의 높이가 보통 사람의 손에 닿지 않는 높이였다 그 높이에 혼자서 나뭇가지에 옷으로 매듭을 만들고 자살 했다는점이 이상했다 누군가가 개입했다는?


22세 D군은, 키시와다시의 직원외 뚜렷한 정보 없음


소녀 E양이 자살한곳



다섯번째 죽음


1992년 7월2일 목요일,소녀 E양(당시 19세) 과일칼로 자신의 가슴을 찔러 자살 했다


유서가 없었고 주택가 도로에서 과일칼로 자신의 가슴을 찔러 죽어가는채로 발견되었다 주택가 주변은 사람도 꽤 다니는곳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양은 사람이 많은 도로 한복판에서 자살을 했다

게다가 죽기전 머때문에 그런지는 모르지만 매우 기뻐했고 죽어가면서 다르다 다르다 말을 계속 반복했다 


19세 E양은 돗토리 현 요나고시 출신으로 지역 고등학교를 졸업한후 오사카 체육 대학에 진학 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소프트볼 선수였지만 대학 진학 후 육상선수로 전향 했다



A군 B군 C군 D군 E양의 자살 사건 이전에도 2건의 사건이 있었다


소년 X군이 자살한곳



여섯번째 죽음


1992년 4월29일 목요일, 소년 X군(당시 17세)는 신나를 흡입후 연못에 빠져 죽었다


17세 X군은 A군,B군의 중학교 후배고 Y와는 같은 학교다




7번째 죽음


1992년5월 29일 금요일,소년 Y군(당시 17세)는 신나를 흡입하고 호흡곤란으로 사망 했다


17세 Y군은 A군,B군에 속해져 있는 폭주족 이였고 셋은 쿠마토리쵸를 일대를 장악했다 


D군과 E양을 제외한 A군 B군 C군 X군 Y군들은 서로 친분이 있었고 신나와 폭주족에 관련되 있었다 또한 사건이 일어난 지역이 반경 1.2km 이내였다는것이 의문점이다


일각에서는 이들의 자살이 베르테르 효과 때문에 전염되어서 자살했던게 아니냐는 추정이 있었지만 밝혀지지 않았다

또한 야쿠자나 같은 폭주족에 의해한 타살이 아니냐는 주장도 있었지만 단서나 증거가 없어서 일단락 되었다

 


출처: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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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SOS 조난 사건(SOS 遭難 事件)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실화괴담/사건사고|2019. 3. 9. 23:32

SOS 조난 사건(SOS 遭難 事件),일본 훗카이도 다이 세츠 산 아사히 다케에서 일어난 의문의 조난 사건이다 일부 해명되지 않은 점이 남아 있지만 조난자가 확인된 사건이다

SOS 조난 사건(SOS 遭難 事件)


사건 발생 1989 년 7 월 24 일 오후,홋카이도 구로다케 산 구로 다케에서 아사히 다케로 가는 길에 행방불명 조난자 남성 2명을 찾기 위해 훗카이도 경찰에서 헬리콥터로 수색을 했다 수색 도중 등산로에 쓰러진 나무를 쌓아 만든 SOS를 문자를 보고 2 ~ 3km 북쪽으로 향하던중 조난자 2명을 구조하게 된다



그런데 남자2명에게 SOS 문자에 대해서 물어보자 전혀 모른다고 대답을 했고 경찰은 또 다른 조난자가 있다고 생각해 다음날 다시 헬기를 동원해 조사를 진행 했다

수색 결과, 쓰러진 나무 문자에서 30 미터의 범위에서 동물에 의해 물린 자국이있는 골반, 대퇴골, 상완골 등의 인골이 흩어져 있었고 "SOS"라고 외치는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녹음 된 카세트 테이프와 테이프 레코더가 든 회색 가방을 발견 됐다


회색가방 안에는 도움을 요청하는 남자 목소리가 담긴 테이프 3개와 녹음기 테이프 레코더,세면 도구 천 조각2장,면허증,치약 세트등의 일회용품이 들어 있었다

유품의 소유자는 1984년 7월에 행방 불명 되었던 아이 치현 고난시의 거주하는 회사원 남성 (당시 25 세)로 결과가 나왔지만 인골을 분석한 결과 남성이 아니였다 25~35세의 키 160cm A형의 여성으로 밝혀졌고 발견 5년전에 이미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의문점이 있다 당시 쌓아 올린 나무는 3그루 이상올려 만든것으로 문자의 한폭은 5m이상이라 성인 남성 한명도 힘들다 근데 인골은 여성의 것이였다 그렇다면 남녀 둘이 조난을 당했던걸로 추측할수 있다



수수께끼의 카세트 테이프 케이스중 하나에는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그려진 스티커가 붙어있었고 애니메이션의 주제가가 녹음된 테이프도 있었다



①SOS 도와달라 벼랑 위에서 움직일수가 없다..를 세번 반복

②장소는 맨 처음 헬기를 봤던 그곳이다

③조릿대가 우거져있어 위로 올라갈수 없다

④여기에서 끌어 올려 달라!



남성은 헬리콥터를 언급하고 있었고 조난 절벽 위에 있는 상황에서 헬기가 날고있는것을 보고 움직이면서 큰 소리로 도움을 요청하다가 가방안에 있던 테이프 레코더(녹음기) 스위치가 우연히 눌러져 녹음이 된게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또한,당시 남성은 벼랑 위에서 움직일수 없다면 SOS구조 요청을 했다

하지만 유류품과 인골이 발견된 장소 주변은 능선이였고 벼랑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당시 남성은 벼랑이 있던 장소에서 탈출을 한후 능선 주변에서 구조를 기다리다가 육식동물에게 먹이감이 되었을거라는 추측을 해본다


실제 SOS 문자


1984년 7월, 조난당한 남자 회사원은 연인이 있었고 같은 날 산에 올라갔다가 행방불명된 것으로 밝혀졌고 연인의 DNA와 인골의 DNA가 일치해 신원이 확인됐다

또한 경찰은 처음 인골이 발견된 장소 근처에 또 다른 인골과 면허증,시계를 발견했고 인골은 남자 회사원 것으로 확인 됐다 두 커플은 조난 당한후 SOS 문자를 만들고 지나가던 헬리콥터를 향해 소리를 질러지만 끝내 구조되지 못하고 사망한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실제 유류품


남자 회사원의 유품을 전달했지만 유품을 받은 가족들은 두번째로 발견된 면허증과 시계는 맞지만 첫번째로 발견된 유류품은 아니라고 주장을 했다 그래서 카세트테이프에 녹음된 목소리를 들려주었지만 목소리가 다르다며 주장을 했다

이후, 1차 유류품과 2차 유류품의 DNA를 조사 한 결과 서로 불일치해 제3의 인물것으로 확인 되었다 그러던중 SOS 문자 근처에서 또 하나의 가방을 발견 되었다 가방 안에는 부적,만화책,카레라 삼각대,보험회사 서류 봉투 1983년에 만들어진 휴지 봉투가 있었다

DNA 조사결과 1차 유류품과 동일했고 회사원 커플이 조난당한 시점보다 1년이나 앞선 것으로 밝혀졌다 제3의 인물의 인골을 찾을려고 했으나 발견하지 못했다...


1989년 8월 4일, 경찰은 현장의 상황에서 범죄 가능성은 없다 더 이상의 단서가 나오지 않는 관계로 현장 수색을 중단하기로 결정 하기로 한다


사건의 의문점이 너무 많다 회사원 커플이 같이 입산했다가 문자 근처에서 조난당해 사망한것으로 결론이 났다

SOS 구조 문자를 만든 남성은 회사원 커플이 아닌 제3의 인물이였다

그런데 SOS 구조 신호를 보낸 남성은 왜 구조문자를 만들고 구조를 기다렸던 것일까? 그 시간에 산을 탈출해도 남을 시간 이였다


또한, 조난당한 세사람은 왜 시간차를 두고 한 자리에서 어떻게 죽었는지 전혀 설명이 되지 않는다...


기묘한 사건이며 미제사건으로 남게된 SOS 조난 사건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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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제 도쿄전력 여직원 살인사건

실화괴담/사건사고|2019. 3. 9. 18:08

도쿄전력 여직원 살인사건(東電OL殺人事件),도쿄 전력 간부 직원이었던 여성 와타나베 야스코(渡辺泰子)가 아파트에서 살해된 미제 사건이다 유력한 용의자로 네팔인이 범인으로 체포되어 유죄 판결을 받아 요코하마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나중에 원뢰로 인정되 감옥에서 풀러나 무죄 판결을 받았다


와타나베 야스코(渡辺泰子)


사건 발생 1997년 3월19일 오후 5시,도쿄도 시부야 구 마루야마 쵸에있는 목조아파트 101호 방 안에서 도쿄전력의 간부급 여직원 39세 와타나베 야스코(渡辺泰子)시신이 발견되었다

사건 현장 아파트


처음 시체를 발견한사람은 아파트의 관리를 맡았던 네팔 요리 가게의 점장이였다 고빈다 프라사드 마이나리(당시 30세)는 이 아파트 옆 건물 4층에 불법 체류한 네팔인 4명과 살고 있었고 피해자가 생전에 매춘했던 상대 중 한 명이기도 했다


고빈다 프라사드 마이나리


사인은 교살(사람을 목을 졸라 죽임)로 사망 했다 시간은 8일 자정부터 다음날 9일 새벽으로 추정 했다 1997년 5월 20일, 경찰은 살인 현장 옆 건물에 살고 있는 불법 체류자 신분과 피해자 여성 지갑에 있던 4만엔이 없어진점등을 고려해 경찰은 고빈다를 용의자로 체포 했다



-살인 현장에 남겨진 사용 된 콘돔에 피고인의 정액과 체모 발견

-피고인은 피해자와 안면이 아니라고 공판 시작 몇 달 동안은 주장하고 있었지만, 그 후 몇 번의 성교하는 정도의 사이로 이었음이 판명 거짓말이 발각 된 것.

-사건 직전에 현장 근처에서 피해자와 함께 목격 된 남성이 피고인 여부.

-현장 아파트의 열쇠를 피고인이 소지하고 있었지만, 사건 이틀 전에 관리자가 반환하는 데 함께 투숙하는 사람이 열쇠를 전달 키를 소지하고 있지 않았다고하는 피고인의 진술의 신용성.

-교유 관계를 상세하게 증거, 사건 직전에 만난이 범죄자라고하는 피해자 수첩의 신용성.

-사건 전에 7 만엔 밖에 소지하고 있지 않은 피고인이 사건에 따라 10 만엔을 지인에게 건넨 돈의 마련.

-피고인이 근무했던 가이 힌 마쿠하리 역 근처의 음식점에서 오후 10시 폐점까지 근무하는 경우 살해 시간과되는 오후 11시 30 분 전후까지 시부야 역 부근의 현장에 도착할 것인가? 피해자의 정기권이 피고인의 토지 감이없는 토시 마구 의 민가에서 발견 된 것.


시부야 구 마루야마 쵸


피해자 여성은 게이오 대학 경제 학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도쿄 전력에 입사 한 엘리트 사원이였다 그러나 회사에 퇴근 후 시부야 구 마루야마 쵸 부근의 거리에서 손님을 초대하고 매춘을하고 있었던 것이 밝혀 졌다

도쿄 전력에 입사한 그녀는 연수입 1,000만엔으로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었지만 하루도 쉬지 않고 1991년경부터 시부야 일대에서 6년간 매춘을 해왔다 그 이유로는 회사에서의 스트레스와 압박감과 어머니와의 갈등이였다는 추측이 있었다


아버지는 1949 년 도쿄 대학 공학부를 졸업, 도쿄 전력에 근무하고 공무 부부장시 원전의 위험성을 지적했기 때문에 강등을 당했고 와타나베 야스코가 게이오 대학 2학년 때 52세에 암으로 사망 했다 

와타나베 야스코가 옷을 갈아입기 위해 들린 109건물 화장실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은 와타나베 야스코는 원전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보고서를 작성해서 반원전을 주장하자 반감을 느낀 직속상관 카츠마타 츠네히사는 와타나베 야스코를 뒷조사를 한후 시부야에서 매춘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시부야 마루야마 쵸 일대에 있는 야쿠자에게 청부살인을 시켰다는 주장이 있다 사건 발생 당일전 피해자는 퇴근 후 옷을 갈아 입기 위해 시부야 109의 화장실에 들렸고 야쿠자는 뒤를 쫓아 살해를 한뒤 마루야마 쵸(渋谷区円山町)에 있는 2층 목조 아파트키쥬우소우(喜寿荘) 1층 101호실의 빈 방에 유기를 했다는 추측이 있다


사고 이전 후쿠시마 원전(事故前の福島第一原発)/카츠 마타 도쿄 전력 회장(勝俣恒久 東電会長)



도대체 와타나베 야스코를 죽인 범인은 누구였을까?  네팔인 고빈다 프라사드 마이나리가 였을까? 카츠마다 츠네히사의 청부살인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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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바마타 여대생 방화 살인 사건 미해결 미제사건

실화괴담/사건사고|2019. 3. 9. 12:01

시바마타 여대생 방화 살인 사건(柴又女子大生放火殺人事件),수사는 계속되고 있지만 범인은 체포 되지 않은 미해결 사건이며 수사 특별 포상금(공공 현상금 제도) 대상 사건이다

코바야시 쥰코(小林 順子(こばやし じゅんこ,당시21세)


1996년 9월 9일 오후 4시, 반경 도쿄도 카츠 시카 구 시바 3 쵸메의 민가에서 화재가 발생해 주민에 신고로 소방대원이 출동 했다 약 2시간 후 화재를 진압후 소방대원이 자택 안을 확인해 보던중 2층에서 상지 대학교 4학년 여대생 코바야시 쥰코(小林 順子(こばやし じゅんこ,당시21세의 시신이 발견해 즉시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사망 했다


시신은 셔츠와 반바지 차림으로 옆을 향해 누워져 상반신에 이불이 덮여 있었다 시신을 확인 해보니 입과 손에는 테이프로 부착되어 있었고 두 다리는 팬티 스타킹 묶여있었으며 목은 날카로운 칼에 6차례 찔려 과다 출혈로 죽어있었다 


사건 현장


사건 발생 10년이 지난 2006년9월, 경찰은 두 다리 묶는 방법이 휘감기매듭이라는 특수한 방법,현장에 남겨진 성냥갑 안에 범인의 DNA를 발견

2015년 9월, 2층 시체에 걸려 있던 이불에 묻은 혈액에서 범인 DNA를 발견 했다 두 DNA 모두 가족 이외의 DNA로 범인것으로 확인되었다

2009년1월, 범인이 가져온 접착 테이프에는 세 종류의 개털을 확인했다 피해자의 집은 한번도 개를 키운적이 없었기 때문에 범인이 키우던 개로 판단 했다 부검에 따르면, 폐에서 그을음 등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살해 된 후 증거 인멸을 위해 불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


사건 발생 당일날 오후부터 강하게 비가 내리기 시작 했다 아버지는 후쿠시마에 출장중이였고 준코의 언니는 직장에 있었다 집에는 어머니와 쥰코 둘만 있었다

15시50분,준코는 화장실에 가기 위해 자기 방에서 한층으로 내려와 미용실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 어머니에게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데 자전거 타고 갈거야?라고 물은 것이 마지막 대화였다


피해자의 가족은 부모님 언니,쥰코 이렇게 4명이였다 쥰코는 명문대학 조치대학 4학년생이였고 2일후 해외 유학을 떠나려던 시기에 변을 당했다

현장의 상황이나 교우 관계 등으로 안면의 범행이라고 생각했다 범행이 준코의 해외 유학 여행 2일전 상황을 생각하면, 범인은 준코의 일정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있어 관련 조사를 해보았지만 유력한 단서를 잡지 못했다. 


사건 당일 오후 4시 30분부터 40분 무렵,  20 ~ 30 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비가 내리는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우산도 쓰지 않은채 피해자의 집 근처에서 배회를 하고 있었다


오후 4시경, 40대로 보이는 남자가 도로에 서서 피해자의 집을 엿보고 있었다

오후 4시경,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자전거를 타고 돌아 다니면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오후 1시경, 40세 전후의 남자가 피해자의 집 근처에서 주부를 미행하고 집 앞에서 라이터를 만지면서 체조를 하고 있었다

오전 9시부터 오후3시까지 6시간동안 흰 장갑을 낀 남자가 카나 마치 공원 주변을 서성였다

사건 전날인 8일 오전 5시경, 피해자의 집 근처 게시판 부근에서 젠장 때려 죽이는거야를 외치며 군가를 부르면서 자전거로 달려온 남자

사건 당일 오후 4시경, 검은 우산을 쓰고 있던 중년의 남자가 피해자 집 근처에 서 있었다

사건 3일전, 40세 중년 남자가 남의 집 문 앞에서 라이터를 만지며 의심스러운 행동을 취하고 있었다

사건 당일 오후 4시30분, 비가 많이 내리던날, 흰 장갑을 낀 20 ~30대 초반의 남자가 우산도 쓰지 않고 현장 근처에서 배회하다가 사라졌다 



준코 어머니의 증언에 따르면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쥰코 씨 스스로가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있는 모습도 있었다고 2016 년에는 언론에서 새로운 증언이 공개되었지만 현재도 유력한 단서가 파악되고 있지 않다

한때 TV 프로그램의 초능력 수사로 해외에서 영매를 불러오고 영시에서 범인을 특정하려고 시도했지만 어이 없게 무산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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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제사건 야마모토 미호 실종 사건 북한납치설?

실화괴담/사건사고|2019. 3. 8. 21:09

야마모토 미호 실종 사건,야마모토 미호(山本 美保)가 자택에서 도서관에 갈게라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선후 행방불명된 미제사건이다 일본 경찰은 미호가 북한에 의해 납치된 사실을 알고 의아한 수사 결과를 발표하게 된다 


미호의 가족들


미호의 가족은 아버지,어머니,큰 아들,미호랑 쌍둥이 미사 다섯식구였지만 큰 아들은 오토바이를 타다가 사고로 사망했다 그런데 미호마저 행방불명이되고 가족들은 슬픔에 잠겼다


이틀 뒤인 6월6일, 미호가 타고간 미니 바이크가 고후역 앞에 놓여있었고 6월8일에는 니가타현 카시와자키 아라하마 해안가에서 손가방이 발견되었는데 가방 안에는 면허증과 지갑이 있었고 도난당한 물품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실종 반 년이 지난 4년간 미호로부터 계속 전화가 걸려오게 된다 대부분 수초만에 끊어졌지만 실종후 3년 4개월에서 6개월사이 2개월동안 2번의 전화가 걸려왔고 10~15분정도의 긴 통화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가만히 들고 있었다

10월18일, 몹시 서러워 흑흑 소리를 내며 전화가 걸려왔다


미사:미호지? 잘 있어?

미호:잘 있어(・・・げんき・・・).....

어머니:잘 있니? 잘 있어?어서 돌아와.....

갑자기 TV소리가 커진다


얼마후 전화가 끊어졌지만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미사는 카시와자키에 갔다고 말한후 다시 전화가 끊겼고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미사가 빨리 돌아와라고 얘기하니 끊겼다 불과 10분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미사가 사라진후 일각에서는 북한 공작원에 의한 납치로 보고 있다 1970년~1980년대 사이 일본에선 이유를 알수 없는 실종자들이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일이 많았다 북한 공작원에 의한 납북이라는 사실이 알려진것은 2000년대 고이즈미준이치로 총리가 방북하여 북일 정상 회담을 하면서부터였다

미호 실종사건 당시 일본에서 납치라는 인식이 없었던탓에 미호의 가족들은 18년간 미호가 귀가하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2002년3월, 고이즈미 총리와 함께 귀국한 하스이케 카오루부부의 납북문제 보도에서 몇번이고 카시와자키라는 지명이 나온것이다


카시와자키는 미호가 실종된 날 들고 간 손가방이 발견된 장소다 미호 가족들은 의심이 확인으로 바뀌게되었고 동생 미사는 납북 문제가 명확해진 지금 나서질 않으면 영영 미호를 만날수 없을거라 생각해 신문사에 편지를 보내게 된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북한을 방문하자 야마나시현 경찰이 미호의 가족들의 사정을 듣고선 연락을 하게 되었다 미호의 이름을 납북 가능성이 있는 특정 실종자 조사회에 올렸다 미호 구출을 위한 활동을 계속하는동안 부친 미츠오가 병으로타계하여 세간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2004년, 야마가타현의 유사마치 해안에서 익사체가 발견이 되었다 DNA 확인결과 미호의 쌍뚱이 자매 미사와 일치했다 20년전에 발견된 시체가 미호였던 것이다

미호가 실종되고 2주후인 1984년6월21일, 일부 백골화된 시체가 해안에 떠밀려와 관광객이 발견하여 신고했다 일란성 쌍뚱이 미사와 DNA가 일치해서 미호와 동일인물이라고 판명했고 자살에 의한 익사였다



그런데 당시 경찰은 가족들에게 비밀로 하고 DNA 감정을 한것이다 야마나시현 경찰은 미호씨로 추정되는 시체가 2구 있는데 1구는 DNA감정이 가능하니 감정을 하자고 2004년4월26일에 4번이나 전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가족들은 일체 듣지 못했고 미호 시체가 2구나왔다는 말에 충격을 받게 된다 경찰 주장이 거짓말이 확실했다


또한 20년전에 발견된 시체의 DNA는 일치했지만 키,체형,복장,속옷사이즈등 당시 미호의 인상착의가 아니였다...


납북 피해자로 접수한 미호를 두고 납북당하려다가 실패한 가능성을 보고 있다 북한 공작원이었던 안명진의 말에 의하면 납치한 사람이 저항하면 심하게 구타를 한뒤 죽인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미호가 그런 상황이였다면 유사마치 해안가에 유기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또한 북한에서 한국으로 망명한 권혁이 1994년 북한에서 봤던 여성이 미호와 너무 닮았다고 증언했다 납북당했다면 북한에서 살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이후 미호의 가족들이 남긴말 이다..


우리들은 진실이 알고 싶은 것뿐입니다. 만약 시체가 미호가 맞다면 당장이라도 아빠와 오빠의 묘에 안치해서 쉬게 해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시체의 자료와 유류품 사진 속에 미호를 나타내는 건 무엇 하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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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제사건 무로란 여자 고교생 실종사건

실화괴담/사건사고|2019. 3. 7. 16:50

무로란 여자 고교생 실종사건(北海道室蘭女子高生失踪事件),고등학생 1학년 치다 아사미(千田麻未,당시16세)가 빵집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던 중 실종된 미제사건이다

치다 아사미(千田麻未,당시16세)


2001년 3월,아사미는 집에서 가까운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3월6일이 학교 휴교일이라 오후 1시에 커피 볶는법을 배우러 간다고 점장하고 약속을 했었다

3월6일 오전 11시30분경, 아사미는 빵집 본점에 전화를 걸어 오후1시에 갈려고 합니다 점장님 계신가요?라고 여자직원과 전화 통화를 했다 여자직원은 알았다고 한뒤 아사미가 1시에 온다고 점장에게 전달했다


낮 12시가 되자 아사미는 집을 나서 편의점에 잠시 들린후 하쿠쵸다이중앙(白鳥台中央)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간뒤 히가시마치 터미널(東町ターミナル)에서

12시25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탔다 이때 친구의 목격 증언에 따르면 버스에 탄후 아사미가 뒷좌석에서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고 한다



12시56분, 아사미는 빵집 근처 히가시도리(東通り) 정류장에 왔지만 내리지 않았고 히가시마치니쵸메(東町2丁目) 정류장에 내렸다 이때 시각은 오후 1시로 빵집 점장님과의 약속이였다

버스에 내린 아사미는 대형슈퍼 무로란사티(室蘭サティ)에 들러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화장품 매장 카메라에 포착이 되었다 오후 1시 04분부터 1시 26분 사이였다 먼가를 살려고 온것은 아닌것 같았다 매장을 배회하면서 누구를 찾고 있거나 피해다녀다거나 했던걸로 보인다


아사미가 버스를 탄 정류장


무로란 사티를 나온 아사미는 우연히 동급생 남자 2명과 마주쳐 간단하게 인사를 한뒤 버스를 타고 빵집에서 가까운 정류장에 13시 41분경 하차 한것으로 밝혀졌다

1시42분,아사미는 빵집 옆 히가시도리 정류장에 도착한후, 남자친구에게 지금 아래에 도착했다고 말한후 전화를 끊고 오후1시46분 다시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은 아사미는 지금 말할수 없으니 나중에 다시 걸게라고 말한뒤 바로 전화를 끊었다

남자친구 말로는 주변이 조용해서 실내에 있는듯한 느낌을 들었다고 한다 이후 남자친구는 다시 아사미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았다는 증언이다


무로란사티 화장품 매장 CCTV에 찍혔던 모습과 동급생2명이 목격된 이후로 아사미를 볼수 없었고 남자친구와의 전화통화를 했지만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점장과 마지막에 아사미가 있던곳과 빵집과의 거리


아사미가 마지막으로 통화한곳이 아르바이트하는 빵집 근처였다 당시 점장은 아사미를 기다리고 있었고 오지 않자 가게를 나와 집으로 가서 자고 있었다는 증언을 했지만 알리바이가 없었고 마지막에 아사미가 있던곳이 빵집 근처라서 수상하게 여긴 경찰은 점장을 용의자로 지목을 했다


빵집 직원


점장은 아사미가 오지 않자 가게를 나갈때 아사미를 찾으러 가겠다고 직원에게 말했다고 했지만 직원은 그런말을 듣지 못했다고 증언을 했다 또한 아사미를 찾으러 갔다고 말했지만 아사미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는점이 수상했다


점장 건물


한편, 탐정을 자처하는 인물이 블로그에서 점장이 운영하던 점장은 건물 소유자이고 2층과 3층은 빈 임대 아파트였다 빈 아파트 어느 방에 아사미를 감금하면서 지내오다가 의심을 받자 아사미를 살해하고 시체를 유기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 경찰은 점장을 용의자로 의심해 집과 매장을 수색했지만 빈 임대 아파트에 방을 조사하지 않는 실수를 했고 점장이 조사받던 도중 빌려왔던 여고생 강간물을 비디오 가게에 반납한것이 이상했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범인은 점장일 확률이 높다고주장했다


유력한 용의자로 점장이 1순위 였지만 빵집 주변 상황을 보면 아닐수도 있다 빵집 뒷문에는 넓은 주차장이 있었고 뒤편에 있는 산이 있어서 납치를 한후 시체를 유기했을 가능성이 있다


스토커의 납치일 가능성도 있다 아사미는 부모와 남동생까지 4인 가족으로 살았고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으며 성적도 좋았다 얼굴도 미인이라서 팬클럽이 있을정도였다


워낙 이뻤던 탓에 다니던 학교 남학생들과 성인남자들이 따라다니거나 연락처를 받는등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동급생들과 같이 일하던 직원에게 물어보니 아사미를 따라다니는 스토커가 있었고 계속 전화를 걸어와 괴롭혔다고 한다 

실종 당시 아사미는 남자친구와 두번째 통화를 할때 지금 얘기 할수 없으니까 나중에 다시 걸게라는 말을 한뒤 연락이 되지 않았다 이떄 스토커가 따라와 당황했던 아사미는 남자친구와 통화를 할려고 했는데 스토커의 방해로 전화를 끊게 되었고 스토커는 곧바로 아사미를 납치해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었을 것이다




목격자도 없고 단서도 없어서 무로란 여자 고교생 실종사건은 해결되지 않은 미제사건으로 남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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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제사건 아이치현 네 모자 살인사건

실화괴담/사건사고|2019. 3. 7. 08:57

아이치현 네 모자 살인사건(愛知豊明母子4人殺人放火事件),일본 아이치현 토요아케시의 주택에 어떤 한 남성이 침입하여 4명의 모자를 살해하고 방화한후 도주한 미제 사건이다

사건발생 2004년9월9일 새벽 4시25분경, 인근 주민에 신고를 받고 119가 도착해 불을 진화 했다 피해자는 아내 카토 리요(加藤利代,당시 38세), 장남 유우키(佑基, 당시 15세), 장녀 리나(里奈, 당시 13세), 차남 쇼고(正悟, 당시 9세)였으며 아버지는 늦게 까지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집에 없었던 이유로 살인을 면할수 있었다 전날 남편 카토 히로토(加藤博人)은 오후 11시경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을때는 평상시 처럼 아무일도 없었다고 한다



사건 당일 오전 4시 5분경, 집 근처에 사는 형에게 자택에 불이 났다는 얘기를 들은 남편 카토 히로토는 직장 동료에게 사정을 얘기한후 집으로 달려갔으나 자택은 모두 타있었고 연기로 가득했다 하지만 카토 히로토는 소방대원의 제지를 뿌리치고 가족을 구하기 위해 집 안으로 들어갔지만 이미 다 숨을 거둔 상태였다


등유는 네 모자 시체 외에도 곳곳에 뿌려져 있었고 성냥개비와 등유가 묻은 신문지가 발견되었다 피해자의 집에는 원래 등유가 없었기 때문에 범인이 가져 올것으로 확인 되었다 아이 치현 경찰(愛知県警察)은 처음에는 일반 화재로 생각했었지만 실내 등유를 뿌린 흔적과 시신에 손상의 흔적을 본후 살인 방화 사건으로 수사를 전환하고 특별 수사 본부를 만들게 된다



범인의 침입 경로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았다 현관과 부엌 문(부엌 및 목욕탕 앞 통로에 연결)외에 1층의 창문이 모두 닫혀 있었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2층 방 창문이 방충망이었기 때문에 들어오는것이 가능했지만 2층에 올라간 범인의 흔적이 없었다

남편 히로토는 열쇠를 가지고 다니는 습관이 없었기 때문에 심야에 귀가했을 때는 뒷문 옆에 숨겨놓았던 만능 열쇠로 출입하고 있었다 근데 사건 당일은 주차장의 소정의 장소 (창고)에 뒷문 열쇠가 숨겨져 있었다. 


아내와 장녀는 잭 나이프로 얼굴과 다른 부위 수십곳을 찔린 상처가 있었으며 장남과 차남은 칼에 찔린 상처가 없는걸로 보아 둔기 같은것으로 맞았던 걸로 판단 했다 또한 저항에 흔적이 없는걸 보아 네 모자가 자고 있을때 벌어진것 보였다 당시 네 모자는 범인의 방화 후에도 어느 정도 살아 있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현장에는 범인의 혈액 흔적이 없었다 범인은 네 모자를 살해 한뒤 입고 있던 옷 등을 현장에서 함께 소각했을 가능성이있다


오전 4시경 이웃 주민이 여성의 비명 소리를 들었다 범행은 30 분 정도로 비교적 짧은 시간에 살인과 방화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사건 당일 소방 작업을 하던 소방대원과 근처의 주민이 현장 근처에서 수상한 승합차를 목격했는데 30~40대 가량의 남성이 운전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였다 2003년 7월 하순 오후 8시반, 누군가가 피해자 집의 현관 문을 억지로 열려고 했으며 2004년에는 피해자 집을 둘러보는 수상한자를 봤다는 주민들의 증언이 있었다


네모자 살인사건이 잊혀질 무렵, 2005년 3월 11일,남편 카토 히로토가 전 직장의 회사에서 약 520 만엔을 컴퓨터 구입비로 횡령한 사기혐의로 체포되었고 다른 회사에서 약 5500만엔의 약속 어음을 가로 챈으로 사기 혐의로 재 체포되었다 이 사건으로 카토 히로토는 사기죄로 징역 3년에 집행 유예 4년을 받고 복역중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남편 카토 히로토가 네 모자를 죽인 범인이 아니냐는 추론이 있었다 카토 히로토(당시 45 세)는 대기업 자동차 메이커의 자회사 자동차 부품 회사 근무하면서 고급 클럽에 자주 다니는 등 씀씀이가 심했고 애인이 있다고 알려져있다

사기 혐의로 체포될 당시 경찰은 네 모자 살인사건에 용의자로 지목을 하고 수사를 했었다 이 과정에서 카토 히로토에 애인과의 인터뷰에서 뜻밖의 사실이 밝혀졌다 증거는 없지만 카토 히로토가 범인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증언했다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 고백했다고 추정을 했다 이에 카토 히로토는 사기혐의는 인정했지만 네모자 방화사건은 억울하다며 완전히 부정했다


유력한 용의자로 남편 카토 히로토였지만 알리바이가 확실해 일단락 되었다

하지만 청부살인으로 가능하지 않았을까? 사건발생 1년전부터 피해자의 집을 배회하는 수상한자가 2번이나 목격되었다 도둑이라면 굳이 같은 집을 2번이상 훝어볼 필요가 없었다 다른집도 많은데 굳이 피해자 집을 여러번 훝어봤던것일까?  살인을 계획한 청부살인이 아니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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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제사건 파일 카메이도 여성만화가 살인사건

실화괴담/사건사고|2019. 3. 6. 17:13

카메이도 여성만화가 살인사건(江東区亀戸漫画家女性殺人事件), 2000 년 9 월 29 일 일본 도쿄도 고토 구 카메이 여섯 쵸메 아파트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이며 범인이 검거 되지 않은 미해결 미제사건 이다



2000 년 9 월 29 일 오후 1 시경, 센서스 조사원이 도쿄도 고토 구 가메이도 6 초메 카메이 그린 아파트 604 호실에있는 만화가 요시다 요코 씨댁을 방문했는데 현관문이 열려 있었다 벨을 눌러봤지만 아무 응답이 없었다

안으로 들어가볼려고 했지만 악취가 심하게 나섰던 이유로 센서스 조사원은 관리인에게 통보 하게 된다 관리인과 같이 들어가 안을 확인해보니 목이 졸라 죽어있는 요시다 요코(吉田陽子,당시 28세)의 시체를 보게 된다


요시다 요코(吉田陽子)가 살았던 아프트


당시 요시다 요코는 티셔츠를 입고 있었지만 아래는 벌거벗은 몸으로 얼굴에 흰 천을 덮어진채로 침대에서 부패되고 있었다 집안을 수색해보니 9월18일, 날짜로된편의점 영수증이 나왔다 영수증의 날짜와 시신의 부패를 대조해보니 약 19일이상 경과한것으로 확인되었다...

사건 때 요시다 요코는 침대위에서 누군가 목을 졸라 살해를 당했고 성폭행 흔적은 없었다 집 안은 어질러져있지 않았고 방에 있던 현금 300만원이있었지만 그대로 있는걸로 보아 원한 관계로 인한 범행으로 추정했다


요시다 요코는 동인지로 유명한 아마추어 만화 작가였다 고등학교때부터 만화를 그렸고 동인지를 발행하는등 그림에 소질이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후 독립한 요시다 요코는 10년동안 혼자 생활하면서 꾸준히 만화를 그려왔다 

소질과 노력으로 인해 그녀는 20살에 이미 연수입이 1,000만엔을 벌만큼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언제부터가 유흥 업소에 근무하고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만화를 그려서 충분히 돈을 벌면서 생활을 할수 있었는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유흥업소 일을 하면서 만화를 그려왔다고 한다 

그리고 올해는 친정에 돌아와 부모와 동거 할 예정이였던 요시다 요코였다



시신은 19일되어서야 발견이 되어서 범인의 흔적과 단서를 찾을수 없어서 사건은 난항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아사히 TV 어떤 방송프로그램에서 이 사건을 다루었을때 뜻밖의 사실이 밝혀진다 요시다 요코의 친구가 말하길 열성팬에게 스토커를 당하고 있었고, 읽지 않아도 되니 가지고 니가갖고있어 난중에 열어봐도대! 라는 얘기였다


편지에는 스토커 팬으로 인해 고통을 받아왔고 그 팬이 나를 죽일것 같다는 내용이였다


하지만 이 편지와 증인내용은 가짜였다 필체로 거짓말이 들통난 요시다 요코의 친구는 처음엔 부정하다가 거짓말을 했다고 시인했다 왜 이런짓을 했냐고 물어봤더니 인기 작가인 그녀가 부러워 질투했다는 이유다


범인 몽타주


그리고 방송에서는 영국의 군사 정보국에서 일하고 있는 크리스 로빈슨이 초능력으로 범인의 몽타주가 작성되었지만 범인의 몽타주로 사건을 해결하기에는 미흡했다


요시다 요코 생전 모습 사진


범인은 누구였을까? 열성팬? 요시다 요코의 친구? 청부살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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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제사건 나카무라 미나코 실종사건

실화괴담/사건사고|2019. 3. 5. 19:53

나카무라 미나코 실종사건,1998년 4월6일, 니가타현 나가오카시에서 살던 나카무라 미나코(中村三奈子,Megumi Yokota,당시 18세)는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입 학원을 등록하러 가던중 실종된 미제사건 이다


나카무라 미나코



가족들이 집에 와보니 미나코에게 대입 학원 등록비로 주기로 한 돈 50만엔중 3만엔을 빌려간다고 메모를 남겼지만 학원에 가지 않았고 집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경찰은 수사중 미나코가 실종되기 9일 전인 3월25일 미나코의 이름으로 여권을 신청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발급된 여권은 실종되기 4일전인 4월3일 발급 되었다

당시 가족들은 미나코의 여권 발급 사실조차 몰랐으며 여행을 갈려고 한 흔적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상한점은 집 근처 나가오카시에서도 여권발급이 가능했다 하지만 미나코는 니가타시까지 가서 여권을 발급했다는점이다

사건 당일 미나코는 여행을 갈려는 옷차림도 아니었고 평상복을 입고 짐도 없이 집을 나섰고 자주 타고 다니던 자전거를 두고 간점을 빼고 이상한점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실종 다음날인 4월7일, 미나코는 니가타 공항을 통해 서울로 갔다는 사실이 확인 되었다 미나코의 이름으로 나가오카 여행사 서울[김포]행 대한항공 티켓을 예매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여행사 직원에게 물어보니 화려한 원피스를 입은 중년 나이 정도의 여성이 미나코의 이름을 사칭하고 서울행 항공티켓을 예매를 의뢰 했다 그리고 그 중년 여성은 일본에 자주 왔는지 익숙해 보였고 숙소 예약은 필요 없다며 왕복이 아닌 편도 항공권을 원했다

집을 나간 당시의 복장 (모자와 후드) 나카무라 미나코


또한 화려한 블라우스를 입고 허스키한 목소리를 가진 중년 여성이였다 하지만 실종된 나카무라 미나코의 당시 복장은 남색 후드 같은 감색 청바지, 파란색 체크 모자를 썼었다


항공티켓을 받은 중년의 여성은 사람을 찾고있는 모습이였고 두리번 두리번거리다가 탑승구로 향했다는 것이다 누군가 또 있었거나 실종된 나카무라 미나코가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실종된 나카무라 미나코에게 직접 항공티켓을 예매하라고 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신고할 염려가 있어 사칭까지 하면서 까지 항공티켓을 예매를 했던 것이다


4월7일, 서울로 출국해 도착했지만 중년 여성과 나카무라 미나코의 행방은 찿을수 없었다

가족들의 의하면 미나코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혼자서 해외 여행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자체가 말도 안된다며 증언을 했다


미나코의 실종은 제3자의 개입이 있었던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무슨 목적으로 미나코에게 접근했고 왜 한국으로 데리고 가는지가 의문점이다


미나코 어머니 나카무라


현재 미나코 어머니 나카무라는 지금도 딸의 행방을 찾기 위해 한국에 자주 온다고 한다

39세의 나카무라 미나코


한국 경찰이 과거의 얼굴 사진 등을 합성 하고 39 세가 된 현재의 얼굴의 이미지를 제작 한 것으로 22 일 확인됐다


실종된 나카무라 미나코는 학업 스트레스로 인해 충동적으로 가출을 한것일까? 아니면 협박과 위협으로 인해 어디로 강제로 끌려간것일까? 나카무라 미나코의 실종사건은 미해결 사건으로 의문점을 많이 남게한 사건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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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제사건 인천 십정동 부부 살해사건

실화괴담/사건사고|2019. 3. 5. 14:52

인천 십정동 부부 살해사건,인천 부평구 십정동에서 집 주인 김씨(당시 56세),부인 임씨(당시 53세)가 피살된 채로 발견된다 두 사람 모두 칼로 전신을 난자당한채로 살해당했으며 적금 통장이 사라진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범인은 추적했지만 장기 미제사건으로 남게 된다



2006년 11월 16일, 오전 7시 인천광역시 부평구 십정동 한 주택, 1층에 사는 세입자가 죽은 집주인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를 하게 된다 집주인 김씨는 8군데 자창이 발견되었고 아내 임씨는 37군데나 칼에 찔린 흔적이 있었다 시신 옆에는 피 묻은 비옷과 신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김씨 부부를 발견한 세입자는 그 날 새벽 2층에서 전화벨 소리와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이상한 느낌에 아침에 올라가서 확인해보니 김씨 부부가 숨져 있었다고 진술 했다

방안 서랍은 열려 있었고 누군가 뒤진 흔적이 있었지만 패물과 현금은 모두 그대로 있었고 없어진 것은 부엌 찬장에 있던 1억원의 적금 통장이였다


김씨는 건축업을 했었고 임씨는 평범한 가정주부였고 빚이 없었고 이웃과의 관계로 원만 했다 당시 범인은 현관문을 따고 들어오지 않았고 담을 넘지도 않은걸로 보아 김씨부부가 문을 열어준 상태에서 집안으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김씨와 범인은 평소 알던 사이나 무슨 일때문에 잠시 들렸다는 것이다 김씨 주변 인물을 조사했으나 용의자를 찾아내지 못했다


유력한 단서로 현장에 피 묻은 비옷이 있었다 흉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왜 범인은 피 묻은 비옷을 버리고 간것일까?

사건 당일날은 비나 눈이 오지 않아 옷에 피가 튀는 걸 막기 위해 입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김씨 부부는 당시 범인에게 칼로 공격을 당하면서 저항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저항을 했으면 다른 부위에 상처가 있어야 했지만 없었다



이에 경찰은 범인이 수십 차례 칼로 찌르는것으로 보아 원한 관계에 인한 살인으로 추측을 했다

 

범인은 현장에 머리카락,지문을 남겨놓지 않았는데 족적과 피 묻은 비옷을 남겨놓았다 왜 남기고 갔는지 이해할수 없는 부분이였다고 한다


한편 경찰은 가족들에 대한 수사도 벌였다 김씨 부부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장남은 의대생,차남은 수의대생이였고 같이 살지 않았다 의심쩍어으나 가족들은 모두 알리바이가 확인되어 혐의를 벗었다


이후 경찰은 모든 계좌와 가입한 보험등에 대해서 조사를 하지만 돈을 빼간 흔적도 없었기 때문에 원한 관계로 결론을 지게 됬다


경찰은 김씨 부부를 살해한 범인을 찾기 위해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60여명의 형사를 투입해 1,500여명의 인원을 조사했지만 수사를 진행 했지만 추가적인 단서와 흔적을 못 찼은채 수사를 종결하게 되는 미제사건으로 남게된다



한편으로는 영화 공공의적 모방 범죄로 보고 있다 1억원의 통장을 가져갔지만 돈을 빼간 흔적도 없었고 두 아들과 1,500여명의 주변 인물을 조사했지만 뚜렷한 단서조차 찾지 못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범인은 영화 공공의적를 보고난뒤 이유없이 묻지마 살인을 했을거라고 추측을 했지만 신빙성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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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제사건 기타칸토 여자 어린이 연쇄 실종사건

실화괴담/사건사고|2019. 3. 4. 17:09

기타칸토 여자 어린이 연쇄 실종사건(北関東連続幼女誘拐殺人事件),1979년 일본 이래 토치기현과 군마현을 줌심으로 벌어진 의문의 여자 어린이 연쇄 실종 사건이다 1979년 토치기현과 군마현 일대 두 현의 경계에 해당되는 반경 20km 일대에서 4명의 여자 어린이가 살해되고 1명은 실종되는 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했다


기타칸토 여자 어린이 연쇄 실종사건


첫번째 사건-1979년 8월3일,토치기현 아시카가시에 살던 5살 여자 어린이가 자신의 집 근처 야쿠모 신사의 경내에서 놀다가 실종된후 8월9일 등산가방에 담기 전라의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시체를 담았던 등산 가방은 특수 사양의 한정 판매된 물건이라 범인을 잡을거라 생각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두번째 사건-1984년 11월17일,토치기현 아시카가시의 5살 여자 어린이가 파칭코 가게에서 실종되고 2년후인 1986년3월8일 집에서 1.7km 떨어진 장소에서 백골이 된채로 발견되었다


세번째 사건-1987년9월15일,군마현 닛타군 오지마마치의 초등학교 2학년 여자어린이(당시8살)가 새끼 고양이를 안고 집 근처 오지마 공원에 놀러 나갔다가 실종되고 1년후인 1988년11월27일, 토네가와 하천부지에서 백골이된 사체 일부는 발견하게 된다


네번째 사건-1992년5월12일,토치기현 아시카가시에 살던 4살 여자 어린이가 파칭코 가게 근처에서 실종된후 5월13일 와타라세강 근처에서 등산가방에 담긴 전라의 시신으로 발견된다



DNA 조사로 스가야 토시카즈가 범인으로 체포되지만 경찰의 판단착오로 인한 누명으로 드러나게 된다 그 누명을 벗을수 있던 이유는 니혼 TV의 시미즈 키요시의 보도 에 하천부지에서 피해 여자 어린이를 데리고 걷고 있던 다른 범인이 목격되었다고 한다



다섯번째 사건-1996년7월7일, 군마현 오타시의 한 파칭코 가게에서 4살 여자 어린이가 실종되었다 2,4번째 사건처럼 파칭코 가게에서 실종되었다 

동일범으로 추측한 경찰은 파칭코 가게의 CCTV를 확인한 결과 아시카가 사건에서 목격된 범인과 용모가 흡사한 남자가 찍혔다고 한다


납치 살해된 여자 어린이들의 나이는 4~8세, 파칭코 가게에서 실종, 하천부지에 시체를 유기, 주말에 사건이 발생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서 동일범으로 추정을 했다


범인은 소아성도착증 혹은 아동성도착증[성도착증] 성향을 가지 남성으로 군마현 오타시와 토치기현 아시카가시 일대에서 휴일날 범행을 저지른것으로 보아 그 지역에서 일하는 사람일 가능성을 제기 했다


용의자 사진


CCTV에서 기타칸토 여자 어린이 연쇄 실종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의 몽타주가 나왔지만 희미하게 보여 범인을 찾기에는 무리였다 

유일한 범인의 단서였지만 끝내 범인은 못잡고 미제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cctv에 찍힌 범인 동영상: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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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제사건 아라시 마유미 실종사건

실화괴담/사건사고|2019. 3. 4. 16:21

아라시 마유미 실종사건(嵐真由美さん失踪事件)은 1994년 9월2일 출산을 위해 친정에 갔던 아리시 마유미(嵐真由美, 당시 27세)는 친구를 만나겠다며 외출을 한뒤 행방불명이 되었다

아라시 마유미


3개월된 딸을 남겨두고 갑자기 사라진 마유미의 실종...


언니 요코


[언니 인 요코 씨의 증언]


실종 당일 마유미는 이해할수 없는 말과 행동을 했다 친구와 만난다고 언니에게 말하고 나갔다 실종 다음날 마유미의 언니 요코가 친구에게 연락을 해보니

만나겠다는 약속을 한적이 없었고 아버지의 말을 들어보니 외출전 마유미는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또한 실종 당일날밤 지인 남성에게 수차례 전화가 걸려왔다 그리고 다음날 언니의 옷장에서 지인남성과 사귀고 싶었지만 배신했다 미안이라는 마유미의 메모를 발견하게 된다


그 후 언니는 지인 남성을 만나서 얘기를 나누는데 실종된 당일 오전에 마뮤미와 만났고 내가 마유미를 죽였다면 감옥에서 속죄해야죠? 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수상하게 여긴 언니는 심부름 센터에 가서 지인남성에 대해 조사해 달라고 의뢰를 하게 된다 조사 결과 지인남성은 사건이 일어난 1년후인 1995년3월9일 캔 주스 2개를 들고 산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들게되고 경찰에 신고를 하게 된다

이후 경찰이 산속을 수색했지만 단서는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2011년10월13일 TV 아사히의 "슈퍼 J채널 추적! 진실의 행방에서 마유미 실종사건을 다루게 된다 마유미 실종 당시 언니는 자신의 옷장에서 여동생의 메모를 발견했고 메모에는 마유미와 지인남성과 불륜을 하고 있었고 지인남성의 전화번호까지 적혀 있었다는 인터뷰를 하게 된다


아버지


그런데 아버지의 인터뷰에서 뜻밖의 사실이 밝혀진다 요코의 인터뷰가 끝나고 바로 아버지와의 인터뷰에서 요코의 이야기는 믿지 말아라

메모를 걸어두었다 말로 하면은 딸 요코가 들을까봐 메모로 적어둔것 같다..


마유미 실종 당시 아버지는 요코가 증언한 얘기가 거짓말이라는것을 알고 있었고 마유미가 왜 실종되는지도 알고 있을지 모른다

그동안 아버지는 왜 묵인하고 있었던 것일까?

아라시 마유미 실종사건은 아버지와 언니 요코의 진실로 풀수 있는 문제다 하지만 둘은 먼가 있는지 침묵하고 있었다


실종된 마유미는 어디로 간것일까? 납치? 아니면 살해를 당했던것일까..... 아라시 마유미 실종사건은 아무런 단서도 못차고 미해결 사건으로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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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제사건 글리코 모리나가 사건 1년동안 실행된 범인의 연쇄 협박

실화괴담/사건사고|2019. 3. 4. 10:00

글리코 모리나가 사건(グリコ・森永事件)은 1984 ~ 1985년 사이에 일본 교툐와 한신 지역을 중심으로 메이저 제과기업,식품 기업들에게 일어난 연쇄 협박 사건으로 범인을 못 잡은 미제사건이다


글리코 사장


사건발생 1984년 3월 18일 오후 9시, 효고현 니시노미야시의 일본 굴지의 제과회사 에자키 글리코 사장 자택에 총을 무장한 정체불명의 남성 3명이 침입했다 에자키 사장의 부인과 딸을 화장실에 묶어 가둔 다음 욕실에서 목욕하고 있던 에자키 사장을 납치해 달아났다 에자키 사장의 부인은 간신히 줄을 풀고 화장실에서 나온뒤 경찰에 신고 하게 된다


다음날 3월19일 새벽 1시, 오사카부 타카즈키시에 위치한 글리코사 이사의 집으로 범인으로 추정되는 남자에게 전화가 걸러온다 범인은 이사로 하여금 지정한 장소로 현금 10억엔과 금괴 100kg을 들고 오라고 요구 한다

이사는 경찰에 신고 하게 된다 오사카부 경찰은 효고현 경찰과 합동으로 수사를 시작 하게 된다 이후 범인은 다시 전화를 걸어왔고 지정한 장소와 몸값을 가져오라고 요구하게 된다 글리코사에서 범인들의 요구대로 몸값을 마련해 그 장소로 가서 경찰이 잠복해 기다리고 있었지만 범인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경찰은 범인들이 몸값을 받아낼 생각이 있는지 의심을 품었다 현금 10억엔,금괴 100개의 무게만 무려 230kg 이였다 몇초라도 빨리 몸값을 받아서 도망가야 하는 입장이였다 또한 에자키 사장의 어머니와 부인과의 통화에서 돈은 얼마든지 드리겠다고 말하자 범인은 돈은 필요없다고라고 대답한것이 이상했다 몸값이 목적이 아니라면 원한관계에 의한 범행이였을까요?


사건발생 3일후 3월21일 오후 2시30분, 일본 국철 직원이 오사카부 이바라키 경찰에 신고를 했는데 에자키 사장을 보호하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 경찰은 급히 출동해 에자키 사장의 신변을 확보하고 자택에 귀가 시켰다

에자키 사장의 진술에 의하면 범인들은 오사카부 셋츠시 토카이도 신칸센 차량기지 근처에 데려와서 아이가와천의 치수조합 작업 오두막에 가두었고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탈출했다고 한다


에자키 사장 납치 사건이 잊혀질 무렵 4월2일, 에자키 사장의 자택에 염산이 들어있는 안약 케이스와 협박장이 도착했다 4월8일까지 자신이 지정한 장소로 현금 6천만엔을 가져오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경찰은 다시 지정한 장소에 가서 잠복했지만 범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4월8일, 마이니치 신문과 산케이 신문의 오사카 지국 앞으로 자신들이 에자키 사장의 납치범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의 편지가 도착했다이를 도전장이라고했다 내용은 도전장을 세상에 공개하라고 요구였다 편지에는 서명이 없었고 발신인 에자키 사장의 명의였다 


4월10일 오후 10시 50분경, 오사카시에 위치한 글리코사 본사에 화재사건이 발생한다 이 불로 사무실 150평방미터 가량을 태웠고 글리코사 영양식품 저장고에 세워진 소형차가 불에타지만 금방 진화되었다

당시 모자를 쓴 의문의 남자가 도망치는것을 본 주민이 목격했고 곧바로 범인을 추적했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4월23일, 에지카 글리코사 앞으로 1억 2천만엔을 요구하는 협박장이 도착하고 다음날인 4월24일 범인은 레스토랑,고속도로 서비스 에이리어,공중전화박스로 계속 장소를 변경하다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같은 날 오사카의 각 메스컴들 앞으로 범인들의 두 번째 도전장이 도착했다 자신들을 괴익 21면상이라고 자칭했다


5월31일, 에지카 글리코사에 도 다시 3억엔을 요구하는 협박장이 도착을 했고 6월2일 셋츠 시내의 한 레스토랑 주차장에 3억엔을 넣은 차를 세워둘것을 지시한다

6월2일 당일, 오사카부 경찰본부 특수수사과 1과 직원 30명이 출동해 차량의 엔진을 고장나게 만든후 잠복하여 범인을 기다렸다 오후 8시45분 어떤 한남자가 3억엔을 넣은 코롤라 차량을 타고 출발했다 얼마가지 못해 차는 멈췄고 잠복한 경찰들에 의해 남자는 잡히게 된다

근데 이 남자는 자신이 범인이 아니고 어떤 사람에게 협박을 받아 이 차를 몰고 지정한 장소로 오라는 명령을 받았을뿐이라는 진술을 했다 경찰은 곧바로 범인이 지정한 장소로 출동해 의문스러운 차량 한대를 발견하고 추격했지만 국도 1호선의 교차로에서 놓치고 만다

6월25일, 범인들은 편지로 에자키 글리코사를 용서하겠다 오늘로 글리코사 협박을 멈추겠다는 선언을 한다



일본 마루다이 식품회사


이후 글리코사에 대한 협박은 없었지만 6월22일, 마루다이 식품 앞으로 협박장을 보냈다 글리코랑 같은 꼴을 당하기 싫으면 5천만엔을 준비하라! 제안을 받아들이다면 파트타임 아르바이트 직원모집 광고를 내라는 내용이였다

같은 날 마루다이 식품 상무의 집에 현금을 담은 가방을 준비하라는 협박문이 날아왔다 마루다이 식품은 바로 경찰에 신고 한다 


6월28일 오후 8시3분, 범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오는데 여성의 목소리로 녹음된 테이프를 튼 것 같은 전화에서 범인은 자신이 지시한곳으로 오라고 말한뒤 전화를 끊었다 오사카부 경찰본부 특수수사계 형사 7명은 마루다이 식품 직원으로 위장해서 지시한 장소로 가보니 지시문이 놓여 있었다

지시문에는 타카즈키역에서 교토로 가는 전철을 타고 좌측 창문을 보다가 흰 깃발이 보이면 창밖으로 5천만엔이든 가방을 던지라는 내용이였다 가방을 가지고 간 경찰은 그대로 전철에 탑승했으나 범인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종점 교토까지 갔다


그런데 전철 안에 잠복해있던 형사 한명이 의심스러운 남자를 발견하게 된다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여우눈을 한 남자였다 이 남자는 마루다이 식품 직원으로 위장한 형사를 주시하고 있었고 5천만엔을 들고 있던 형사를 계속 따라 다니고 있었다 범인으로 추정해 체포할려고 했지만 범인들을 일망타진할 목적으로 지시를 하면 체포하라는 말에 범인을 눈앞에 두고선 멍을 타고 있어야 했다 그렇게 멍을 타고 있을 무렵 타카즈키시에 도착을 했고 플랫폼의 혼잡함 가운데 범인을 놓치게 된다


1984년7월, 마루다이 식품 이사의 집에 현금을 요구하는 협박장이 도착을 했고 7월6일 오후8시7분 아이의 목소리로 녹음된 전화가 걸려와 지정된 장소를 알려주었다 하지만 범인은 4번에 걸쳐 장소를 변경한 끝에 최종 장소에 현금을 가져오게 했으나 범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마루다이 식품은 초반 범인의 협박을 비밀리에 부쳤으나 매스컴을 통해 협박을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후 마루다이 식품에 대한 협박은 끝나게 된다


일본 모리나가 제과 회사


1984년 9월12일, 오사카부 오사카시에 위치한 모리나가 제과의 칸사이 판매 본부에 협박장이 배달된다 글리코랑 똑같은 꼴을 당하기 싫으면 1억엔을 준비하라 그렇지 않으면 청산소다를 제품에 넣고 매장에 놓아두겠다는 내용이였다

9월18일 범인은 아이의 목소리로 녹음된 전화를 모리나가 제과의 칸사이 지사로 걸어왔고 같은 내용을 다섯 번 반복해 강조를 했다 범인은 지정된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고 모리나가 제과 협박은 마무리 됬다


범인의 협박장과 청산소다가 들은 제품


하지만 범인은 처음 보냈던 협박장에 말대로 행동을 했다 10월7일 ~ 10월13일 사이에  오사카부와 교토부, 효고현과 아이치현의등 여러 슈퍼마켓에서 의문스런 모리나가 제품이 발견되었다

제품 겉에는 물러나는게 좋을거다,위험, 먹으면 죽는다..괴인21면상이라는 내용의 종이가 붙어있었고 제품안에는 청산소다가 들어있었다


10월8일, 오사카의 한큐 백화점으로 협박장을 보냈다 한큐 백화점 매장에서 모든 모리나가 제품을 철거하라, 모리나가는 우리에게 반항했기 때문에 쳐부수겠다는 내용이였다


10월15일, NHK 오사카 방송국 앞으로 정제된 청산소다가 배달되고 각 신문사에는 도전장이 보내졌다 이 청산소다로 몇명을 죽일수 있을까?라는 내용이였다

퀴즈의 상품은 청산소다가 들어간 모리나가 제품이고 퀴즈 정답을 보낼곳은 경시청 총무부 기획과장이라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일본 하우스 식품 회사


모리나가 제과에 대한 협박과 꼬장이 끝날 무렵 1984년 11월7일 하우스 식품 총무부장의 집에 협박장이 날아들었다 내용은 11월14일 교토 후시미구의 레스토랑에 현금 1억엔을 들고 오라는 협박장과 청산소다가 들어간 하우스 스튜가 동봉되어 왔었다

11월14일, 오후 8시 20분 범인으로부터 집에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에는 여자아이의 목소리로 녹음된 테이프가 현금을 전달한 장소를 지정했다 교토부 경찰 본부와 오사카부 경찰 본부에 합동수사본부는 오사카와 교토에 다수의 경찰을 배치했다 역시나 지정 장소에는 지시문이 있었다 지시문대로 이동했고 총 4번의 반복끝에 최종 장소가 지정되었다

메이신 고속도로의 남교토 인터체인지 부근에서 대기 중이던 교토부 형사가 여우눈을 한 남자를 보게 된다 저번에 놓쳐던 유력한 용의자였던 것이다 형사는 곧바로 보고 하였고 여우 눈을 한 남자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세번에 걸쳐서 다른 경찰들에게 목격이 되었다 범인은 현금을 실은 차를 오츠 서비스 구역으로 이동하도록 지시했다 오즈 서비스 구역에 형사 2명을 배치했다 그런데 여우 눈을 한 남자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이 남자는 미행이 있는지 살펴보았고 벤치에 뭔가를 붙이는 등 수상한 행동을 했지만 형사 2명은 감시만 하라는 지시에 또 다시 놓지케 된다


이후 오츠 서비스 구역에 오사카부 경찰 본부의 특수수사계 형사들이 도착해서 현금 수송차를 살피는 있는 여우 눈을 한 남자를 보게되지만 체포 지시가 없어서 또 다시 놓치고 만다 그사이 여우 눈을 한 남자는 일반 도로로 빠져나갔다

다시 범인은 차량을 쿠사츠 주차 구역으로 이동하게 했고 나고야 방면으로 가다가 흰 천이 보이면 그 천 밑에 있는 깡통에 넣은 지시서를 보아라라는 지시를 받게 된다

그러나 이 지역은 무선통신이 되지 않았고 그곳으로 가보니 지시와는 달리 깡통은 보이지 않게되자 10시20분 합동수사본부는 수사를 중단하게 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하우스 식품에 대한 협박 사건 수사의 상황을 전혀 모르던 시가현 경찰 본부 관할 경찰서의 외근직원이 순찰중 천이 붙어있는곳 근처에서 밤인데도 전조등을 켜지않고 있는 소형 자동차가 정차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검문을 할려고 소형차로 다가가자 급발진해 도망을 친것이다 이에 외근 직원은 차에 타 소형 자동차를 추격했지만 실패하고 만다

9시25분 경찰차가 소형 자동차를 발견했지만 운전자는 도망친 뒤였다 차량은 11월12일에 도난된 차량으로 밝혀졌으며 사건의 범인이나 관련자가 탔을거라는 추측을 했다 이 사건으로 외근 직원은 소형차의 운전자를 잡지 못한 책임으로 사직을 해야만 했다

11월9일 하우스 식품의 부장 앞으로 협박장이 날아왔다 11월14일의 있었던 일을 언급을 했으며 지금은 모리나가를 상대하느라 바쁘니 너희들은 나중에 상대해주마라는 내용이였다 이 협박장을 끝으로 하우스 식품에 대한 협박은 중단되었다


실제 범인 협박장


1984년12월7일, 후지야의 노무부장 앞으로 협박장이 도착했다 테이프와 청산소다가 동봉되어 있었다 며칠 뒤 12월15일 노무부장 에게 다시 협박장이 도착했다

내용은 12월24일 오사카 우메다 백화점 옥상에서 2천만엔을 뿌리라는 내용이였고 후지야 노무부장은 이를 거부했다


12월26일, 도쿄의 슈퍼 사장 앞으로 협박장이 도착했다 1월5일 이케부쿠로의 빌딩 옥상에서 2천만엔을 뿌리라는 내용이였고 이를 거부 한다


12월 4일, 아마추어 무선통신인이 수신 대역에서 이상한 내용의 무선이 잡아낸것이다 21면상과 타마사부로가 주고 받는 대화였다


타마사부로(玉三郎): 21면상, 여기는 타마사부로...

21면상: 약은 준비할 수 있는가?

타마사부로: 사람(ひと), 뚜껑(ふた), 사람(ひと), 여섯(ろく)[4] 항공권이 왕복으로 확실히 잡혀 R6[5]에 가는 경우에는 당일치기로 반드시 갈대가 붙지 않도록 돌아오라.

21면상: 후지야는 돈을 낼 것 같지 않다.

타마사부로: 후지야는 포기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아마추어 무선통신인은 이를 녹음해 경찰에 신고를 했고 수사를 진행했지만 별다른 단서를 찾아내지 못했고 후지야의 협박은 중단된다


1985년2월13일, 언론들에게 발렌타인 데이 폐지를 주장하는 도전장이 도착했고 같은날 도쿄와 아이치현에는 물러나는게 좋아 위험이라고 적힌 초콜릿들이 잇달아 발견 되었고 초콜릿에는 청산소다가 들어있었다 메이지와 롯데의 제품에도 청산소다가 들어있었다고 합니다


2월24일, 범인들은 언론에 모리나가에 대한 협박 종료를 선언하는 휴전장을 보냈지만 3월6일 와카야마현에 위치한 전통 일본식 과자를 만드는 회사 스루가야에 5천만엔을 요구하는 협박장이 도착했다

그러나 이틀 뒤인 3월8일, 스루가야에게 현금 받는 걸 연기하겠다는 내용의 편지가 도착했고 스루가야에 대한 협박이 중단됬다


1984년8월7일, 시가현 경찰본부의 본부장이 퇴직하는 날 자기 관사 마당에서 분신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본부장은 하우스  식품 협박 사건때 수상한 차를 놓친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퇴직하는 상황이었다 유서를 남기지 않았으나 이 사건 때문이라는 추측이 있었다


8월12일, 범인으로부터 선언문이 보내졌다 이제 회사들 협박하는 걸 그만두어도 할일은 많다 악당 인생 참 재미있지라는 내용이였다 사건종료를 선언하는것과 분신자살한 시가현 경찰 본부 본부장에 대한 조의 대신이라고 밝혔다

범인이 사건종결을 선언한후 하우스 식품의 우라카미 이쿠오 사장은 아버지 우라카미 야스시게의 성묘를 찾아가서 이 사건의 종료를 알리려고 비행기를 탔다가 비행기가 추락해 사망하게 된다 이 사건이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다


실제 협박 테이프


더 놀라운 사실은 사건 발생 6년전 1978년 8월17일, 글리코의 상무 앞으로 돈을 요구하는 1시간짜리의 협박 테이프가 배달되었다 중년의 남성의 목소리로 자신을 부라쿠민 해방동맹 간부라고 자칭을 했다

글리코 사장 납치,글리코사 방화,청산살포과장의 유포등이 발생할것이며 이 일을 막고 싶으면 3억엔을 내놓으라는 내용이였다 6년뒤 테이프 내용대로 사건은 발생했다

여우눈을 한 남자 몽타주


사건은 1년만에 종결이 되었고 범인들은 많은 증거물들을 남겼지만 신상을 찾을 만한 단서가 없던 탓에 범인을 잡는데 실패하고 미제사건으로 남게 된다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되는 여우눈을 한 남자를 몇번이나 목격했지만 윗대가리의 지시로 인해 멍을 타고 있어야 했으며 끝내 놓치고 말았다 몇번이나 지시할때까지 대기하라는 명령에 여우눈을 한 남자를 놓치게 된다 이렇게 보자면 경찰에 내부 스파이가 있었던게 아니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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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만에 해결된 일본 여고생 살인사건

실화괴담/사건사고|2019. 3. 3. 11:15

2004년 여고생 살인사건후 14년동안 범인을 못찼고 미제사건으로 남게 되지만 14년2개월 사토미를 죽인 범인이 어떤 한 사건으로 경찰에 불구속되어 해결된 일본 살인사건 입니다


사토미양과 범행현장


2004년 10월5일 오후 3시 시험기간이라 평소보다 학교에서 일찍 돌아온 고등학생 2학년 키타쿠치 사토미(北口聡美)(당시 17세)는 자기 방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고 있었는데 비명소리와 계단을 뛰어내려가는 소리를 듣고 달려온 할머니와 여동생(초등학생 6학년)은 현관 부근에서 로 가슴과 복부를 찔려 쓰러져있는 사토미를 보게 됩니다

곁에는 어떤 한 젊은 남자가 서 있었고 여동생은 맨발로 집에서 도망쳐 나와 30m를 달려 원예점에 도움을 요청을 했고 범인은 현장에서 할머니마저 로 10군데 이상을 찌른 후 도주를 하게 됩니다

에 찔려 의식이 없던 할머니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범인이 다시 올지모른다는 생각에 문을 잠그고난뒤 경찰에 신고를 하게 됩니다

할머니와 사토미는 병원에 이송이 됩니다 할머니는 중상을 입어 위태로워지만 다행히 회복되어 무사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치명상을 입은 사토미는 끝내 사망하게 됩니다


사건 발생 당시 범인의 초상화


나이는 20 세 / 신장 1 미터 65 센티미터 / 체형 머리는 약간 갈색으로 짧고 눈이 가늘고 뺨에 여드름 같은 흔적이있는 것이 특징


현장에서 범인의 얼굴을 목격한 할머니와 여동생의 토대로 몽타주를 만들게 되고 사토미양의 손톱에서 범인의 DNA를 채취하지만 범인을 잡는데는 실패 했다고 합니다


사토미 살인사건 범인 몽타주 전단지 현상금


몇년간 범인이 잡히지 않자 사토미 아버지는 2005년12월 블로그를 만들고 정보 제공을 해달라는 호소, 2007년 3월 딸의 대학 진학을 위해 모아둔 돈 300만엔(우리나라돈 3000만원정도)을 현상금으로 걸었으며 범인을 잡기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범인몽타주 전단지를 돌리고 살인사건 피해자 유족의 모임에 가입해 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범인을 잡지 못했고 14년동안 해결못한 미제사건으로 남게 됩니다


카시마 마나부(鹿嶋学) 체포, 당시 35세


그런데 사건 발생 14년2개월만인 지난달 우연에 일치로 범인을 검거하게 됩니다 범인은 카시마 마나부(鹿嶋学) 35세로 야마구치 현 우베시로 거주하고 있었고 건축 회사에서 근무하는 직장인였다고 합니다


직장내 폭행사건으로 불구속 된 카시마 마나부는 수사과정중 지문하고 DNA가 14년전 사토미 여고생 살인사건 범인의 DNA와 일치를 했고 자백을 받아내 마침내 용의자를 체포하게되었다고 합니다


14년전 범인은 21세였으며 자전거를 타고 야마구치현 우베시에서 히로시마현 하츠카이시까지 가다가 우연히 길을 지나가던 여고생 사토미를 보게 되었고 성충동을 이기지 못해 그녀를 따라가 집으로 들어갔고 2층에서 성폭행을 시도를 했지만 심한 저항을 했고 계단을 내려가 도망치는 사토미를 쫓아 칼로 찔러 살인을 했다는 증언을 받게 됩니다


당시 경찰에 의하면 범인 카시마 마나부는 우연히 길에서 보고 미행후 성폭행을 할려고 했지만 저항하자 칼로 살해했다고 했지만 범인은 애초에 칼을 소지하고 있었고 사토미양을 찌를때 한번에 그치지 않고 수십 군데 찌른거에 대해서 의문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이에 경찰은 의도적인 목적으로 가족에 대한 원한에 의한 범행 가능성이 있다고 의혹을 품었습니다


하지만 별다른 진술이 나오지 않자 경찰은 정신병,정신질환으로 판단을 하고 사건을 마무리 하게 됩니다 

당시 이 사건을 해결하지 위해 30만명의 조사원이 투입되었으며 시민제보 5900건이 있었지만 범인의 흔적조차 찾을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14년이 지난후 뜻하지 않게 범인을 찾게 됩니다


근데 매우 충격적인 사실은 범인 카시마 마나부는 성실하게 출근하던 모법 직원이였는데 아직도 그가 살인마라는 믿기지 않다는 가족들과 회사 직장 동료들의 증언 입니다


14년2개월만에 잡힌 범인 카시마 마나부 억울하게 죽은 키타쿠치 사토미의 복수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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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해결 미제사건 나고야 임산부 엽기 살인사건

실화괴담/사건사고|2019. 3. 2. 16:00

미해결 미제사건 나고야 임산부 살해사건(名古屋妊婦切り裂き殺人事件)은 일본 나고야시에서 일어난 범인을 잡지 못한 엽기적인 살인사건이다


1988년 3월18일 저녁 7시경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 나카가와구에 있는 아파트로 귀가한 31세의 회사원 남편은 평소보다 일찍 퇴근을 했다 아내의 출산 예정일이었던 13일이 지났는데도 출산의 기미가 없어 불안한 마음도 있었고 오전까지만해도 아내와 연락을 주고 받았지만 오후가 되자 전화를 받지 않았던 이유로 급히 집으로 왔던것이다

사건 현장


집에 와보니 대문이 열려있었고 집안의 모든 불이 꺼져있던것이다 그리고 어디선가 아기의 울음 소리가 들려와 거실로 가보니 만삭의 잔혹하게 살해 당한 아내를 발견하게 된다


누가 들어왔는지 만삭의 아내는 양손이 단단히 묶여 있었고 목에는 전깃줄이 감겨 있었다 심지어 아내의 배가 예리한 칼로 잘려 있었다는것이다 그리고 아내의 발 밑을 보니 태아는 탯줄이 잘린채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울고 있었던것이다... 아내를 죽인 범인은 목을 졸라 살해를 한뒤 시체의 배를 갈라 태아를 꺼내고 뱃속에 휴대폰과 열쇠고리를 넣어두고 지갑을 가지고 사라진것이다


태아는 무릎 뒤쪽, 허벅지 뒤쪽 고환에 칼 상처가 있었지만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고 4월 2일날 퇴원했다 조금만 늦었더라도 태아의 생명은 위험했다


시신은 명치에서 하복부까지 길이 38 cm, 깊이 2.8 센티미터에 걸쳐 세로 일직선으로 정교하게 잘라 의료일에 종사하는 사람의짓이라고 판단을 했지만 산부인과 의사에 말을 들어본 결과 당시 살인 사건의 절개는 산부인과에서 하는 제왕절개법이 아니라는것이다


이후 경찰은 잔혹하고 엽기적인 사건에 남편을 용의선상에 올려두었다 그 이유는 집에 도착했을때 문은 열려있었고 집이 어두컴컴했는데도 불구하고 남편은 아내부터 찾을 생각을 하지 않고 옷을 갈아입었다는점이다

그러나 부검결과 아내의 사망시간은 오후 3시였고 남편은 회사에 있었던것이 확인되어 용의선상에 제외가 된다..


죽기전 아내가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은 암웨이 통신판매에 참여하던 여성으로 확인되어 조사한결과 이 여성은 딸기를 사들고 아내의 집에 방문을 했고 두사람은 딸기를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후 암웨이 제품을 주고 대금을 받았던것이다

거래가 끝난후 둘은 아파트 밑의 주차장까지 같이 내려갔으며 아내가 집의 대문을 잠그지 않았다는 증언을 한다 범인은 열려진 대문으로 집 안으로 들어와 살해한것으로 추측을 하고 있다


피해 여성은 부업으로 암웨이 제품 판매를 담당하고 있었고 그 거래형태는 다단계 마케팅,다단계 사기[피라미드] 였으며 부업 관련 원한을 샀던 사람이나 다단계회사에서 벌린 일로 추측을 하고 있다


얼굴을 가린 한 남자가 빨간색 화살표의 방향으로 아파트나 맨션을 돌아다니면서 집집마다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배회하면서 걷고 있었다고 한다


몇일뒤 경찰은 제보를 한통 받게 된다 아내가 살고 있던 집 바로 아래층에 살던 사람 남자가 오후 3시부터 20분쯤 사이 아파트를 배회하는것을 목격했다는 증언이였다

목격자에 의하면 누군가 대문 문고리를 잡고 찰칵찰칵 하는 소리를 들리고 난뒤 벨이 울려 나가보니 165cm 키에 양복을 입은 30대 정도의 남자가 나카무라씨를 아십니까?라고 물어봤다는것이다

집주인은 그런 사람은 모른다고 하자 남자는 가버렸다고 한다 이상한점은 벨을 눌러서 물어보면 될일인데 굳이 대문이 열렸는지,잠겼는지 문고리를 돌려봤다는게 수상했다...


경찰은 이 남성인 범인일 가능성을 보고 당일 현장 부근을 통행하는 400 명 이상의 탐문하는 등 남자의 행방을 쫓고 있었지만, 그 발걸음을 잡을 수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사건의 범인을 알고 있다며 사이트를 만들었다 사건으로부터 2년 후인 1990년2월 어떤 남성이 자신의 집에 침입하려고 하자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자신의 신고를 묵살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거주지는 임산부가 살던 집 근처로 한겨울에 재킷도 없이 니트만 입은 남자가 자신의 집에 들어오려고 했다는점이다 이에 그녀는 아이치 현 경찰은 이미 사건의 범인을 이미 알고 있지만 증거가 없어서 잡지 못해서 자신의 집을 도청하고 범인이 살해하려 들때 바로 체포를 해서 자백을 받아내려고 하는것이라고 주장을 하게 된다 


경찰은 범인을 잡기 위해 자신을 미끼로 쓴다는 생각에 이 사실을 폭로하고자 사이트를 만든것이다 사이트주소 <<링크




잔혹하고 충격적인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범인을 잡을 만한 단서나 증거가 없어서 범인을 잡는데 실패하고 미제사건으로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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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사건 일본 하치오지 슈퍼 강도살인 사건

실화괴담/사건사고|2019. 3. 2. 11:43

일본 하치오지 슈퍼 강도살인 사건(八王子スーパー 強盗殺人事件:하치 오지 슈퍼 난뻬이 사건)은 1995년 일본 한 슈퍼에서 범인이 총기로 아르바이트생 여성 3명을죽인 사건이며 해결하지 못한 미제사건이다


하치오지 슈퍼[八王子スーパー 強盗殺人事件 ]


1995년7월30일 도쿄도 하치오지시의 슈퍼마켓 난페이 오오와다점,파트타임 근무자 이나가키 노리코(稲垣則子, 당시 47세)와 여고생 야부키 메구미(矢吹恵, 당시17세),여고생 마에다 히로미(前田寛美, 당시 16세) 여자 3명만 근무를 했었다 이 시간에 남자 근무자는 퇴근한터라 슈퍼에는 여자들만 있었고 인근 100m 떨어진 공원에서는 현지 자치회가 주최하는 오본춤 대회가 열렸던터라 가게 주변은 오본춤 행렬 때문에 매우 시끄러웠다고 한다


여자 3명은 정상적인 근무를 하고 있었고 오후 8시가 되자 1시간 일찍 퇴근을 할려고 이나가키 노리코는 일찍 계산대를 닫고 정산을 위해 매상을 가지고 2층 사무실로 올라가게 된다

계산대에는 야부키 메구미마에다 히로미만 남아있었다 이 때 아까부터 슈퍼 주위를 배회하던 40~50대정도되보이는 남자가 가게 안으로 들어와 물건도 사지 않고 어슬렁 걸렸지만 신경쓰지 않았다고 한다

오본춤 행렬이 탄고부시[탄갱절]을 부르면서 절정에 달했고 퇴근시간이 되자 야부키 메구미는 계산대에 있는 매상금[돈]을 들고 2층 사무실로 올라갔다 이나가키 노리코는 돈을 받아 금고에 넣은뒤 가게 불을 끄고 문을 닫게 된다


오후 9시 7분이 되자 오본춤 행렬이 끝나고 주위를 조용해지고 이나가키 노리코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을 데리러 오라고 말을 하고 슈퍼에서 기다렸다고 한다

9시 20분 이나가키 노리코의 지인은 슈퍼에 도착해 주차장에 정차를 하고 이나가키 노리코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고 한다


그런데 25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자 먼저 음식점으로 갔다고 생각하고 음식점으로 차를 돌려 확인했지만 이나가키 노리코는 음식점에 없었다고 한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여주인과 동행하여 다시 슈퍼로 가게 된다


10시에 도착한 여주인은 사무실로 갔는데 이미 문이 열려있었고 문 안족을 둘러볼려고 했지만 키가 작은터라 들여다 볼수 없었고 문이 열려있던지라 무서워서 혼자 들어가지 못했고 이나가키 노리코의 지인을 불러서 같이 사무실로 들어가 안을 확인하는데 총에 맞아 죽은 3명의 여자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이나가키 노리코와 야부키 메구미는 이미 사복으로 갈아입은후였기 때문에 범인은 이들이 사무실을 나가기 직전에 침입 한듯 보였고 이나가키 노리코는 사무실 금고 옆에 축 늘어진 모습으로 발견되었는데 머리에 총알 두 발을 맞은채 있었으며 가까운 거리에서 총알을 맞았다고 한다

야부키 메구미와 마에다 히로미는 사무실 한가운데 금고 앞에서 접착테이프로 손이 묶인 채로 각각 머리에 한발씩 총을 맞아죽었있었다 범인은 먼저 이나가키 노리코를 죽인 다음에 야부키 메구미와 마에다 히로미를 위협하고 총을 쏜든한데 이 모든 상황들이 불과 몇 분 사이에 이루어졌다는게 기묘한일이라고 한다


여자 3명을 죽인 범인은 총 알 한발을 금고에 쏘았지만 금고를 열거나 사무실을 뒤지지 않은채 사무실을 빠져나갔다고 한다 을 노렸다면 총으로 여자들을 협박해서 금고를 열게 했어야 했지만 여자 3명만 죽이고 도망쳤다는점이다

범인의 목적은 처음부터 살인이였고 돈에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금고 안에는 매상금 5백만엔[한국돈 5천만원]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무실안에서 발자국 10개가 채취되었는데 모두 같은 족흔이였고 단독범으로 추청을 하였다 발자국에는 미세한 철분과 점토,이끼가 발견되었는데 철분은 용접 작업중에 나온것으로 철공소에서 일했을 가능성을 비추어보았다


하지만 범인은 총기 사용에 매우 능숙했다 세 사람 모두 뇌의 중추를 정확하게 겨냥해 명중을 했고 사용한 총기는 필리핀제 권총으로 명중률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오후 5시30분 하얀 셔츠에 회색 바리 차림을 한 40~50대 남자가 슈퍼 근처를 배회를 하는걸 슈퍼마켓 고객이 목격을 했었고 동네 주민이 슈퍼 옆 골목에 남자의 그림자가 있는 것을 목격을했지만 차의 라이트 불빛 때문에 얼굴은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총에 맞아 죽은 피해자들


몇몇의 용의자들은 추측해냈지만 명확한 근거가 없었고 당시 슈퍼마켓의 범인을 얼굴을 자세히 목격한 목격자가 없어서 사건은 종결되고 미제로 남게 된다...

돈이 필요없었던 범인은 청부살인? 원한살인 이였던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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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츠보노 온천장으로 흉가체험하러간 여성2명 실종 미제사건

실화괴담/사건사고|2019. 2. 28. 14:44

1996년5월5일 21시경 일본 토야마현 히미시에 사는 19세 소녀 두명은 가족에 담력 시험하러 간다며 차를 끌고선 오즈시에있는 츠보노 온천장으로 간후 실종된 사건입니다

온천장 여성2명 실종(坪野鉱泉肝試し失踪事件)


두 소녀는 가는도중 해양 파크에 들러서 친구를 만난것이 확인 되었고 밤 10시경 도야마시와 나메리카와시를 거치는 국도 8호선우오츠 방면으로 달리는 그들의 차량의 목격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삐삐로 지금 우오즈시에 있다고 연락한것이 마지막이였다고 합니다


가족들은 두 여성이 돌아오지 않자 경찰에 신고를 했고 경찰은 두 여성의 행방을 추적 합니다 대규모 수색이 이루어졌지만 흔적조차 찾을수 없었고 10개월이 경과한 1997년3월 전단지를 돌려 공개 수사에 나섰지만 두 여성의 행방은 물론 타고갔던 자동차도 발견 못하고 미제사건으로 남게 됩니다


온천장에 심령스팟을 하러간 두 여성은 도대체 어디로 간것일까요?


5월5일 이전에도 이츠보노 온천장을 찾았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미 이 둘은 한번 이곳을 방문했고 5월5일에 이곳에 흉가체험을 해보려고 했다가 실종된게 아니냐는 추측이 있었습니다


이 당시 일각에서는 4가지의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이곳을 심령 스폿이라고 하여 찾는 폐허덕후들이 있었고 인근 폭주족들의 집합처라는 소문 때문에 인근 주민들은 치안 문제로 항상 두려움에 떨면서 지내야 했다고 합니다


①폭주족에 의한 납치와 살해

②북한에게 납치

③바다와 댐,호수,강,절벽에 추락사고

④귀신의 소행



유력한 근거로 폭주족의 소행으로 보고 있습니다 입구는 철판으로 봉쇄되었지만 사람 한 사람이 지나갈만큼의 구멍이 있습니다



안으로 들어오면은 맨 먼저 보이는 풍경이 낙서 투성입니다 기둥에는 도나(도나미)연합의 문자가 보이고 벽에는 온갖 낙서가 많습니다



도야마 현은 "폭주족의 발상지" 라고되어있다. 폭주족이라고하면 '스펙터'가유명하다고 합니다한때 천둥족으로 불리었고 1972 년 6 월 17 일 (토요일) 자정부터 18 일 새벽도야마 현 도야마시에서 도로를 서킷 장 대신 젊은이들의 승용차와 오토바이를 몰고 대기하고 있었고 구경꾼이 삼천 명 정도 있었다고 합니다 오백 명의 폭주족들이 국도 8 호선이나 시도에 난입후 지나가는 택시와 소방차를 발길질하여 난동을 피다가 끝에 승용차를 몰고선 상점으로 돌진후 상점에서 구경꾼들과 폭주족들이 차와 담배 등 50 만엔 상당을 훔쳐달아난 사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때 언론과 경찰들이 폭주족이라고 호칭한것이 시초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소동은 도야마 현에만 머물지 않고 다음 해 9 월까지에 걸쳐 호쿠리쿠 · 중국 · 시코쿠 각 지방 도시까지 파급, 마침내 2500 명 이상 검거를 해냈고 이것이 일본의 폭주족 새벽이라고 합니다



SKC, 도나 연합 도야마 연합, ST 온빠니온 이 폭주족들은 얼빠진 양키 망상이라는 뜻이 아니라 도야마 연합이면 현재도 활동중이라고 합니다

도나연합은 2008년 여성을 폭행해 맴버7명이 체포된적 사건이 있었으며...




2001년에는 16세의 여고생이 남자에게 담력 시험을 가자면 도착을 했는데 강간을 당하고 하는 장면은 촬영을 해서 협박을 하면서 매춘을 시켜 돈을 벌인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희생된 현장이 바로 윗 사진이라고 합니다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옛말이 여기서 나오는것 같습니다 츠보노 온천장(坪野鉱泉肝試し失踪事件)은 심령스팟으로 유명했지만 폭주족.일반인들이 몰리는 장소로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사람들의 의해서 다치거나 죽을수도 있는곳이라고 합니다


심령스팟을 하러 온 여성 2명도 사람들한테 납치되거나 살해당하지 않았을까요?




약420명의 실종자가 발생했었고 120명이 납치된 루트 지도 입니다

호쿠리쿠 일대가 북한과 가까운곳이라 북한 공작원에게 납치되었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숨을만한곳이 아니라는 의견이 나왔으며 모국에 의한 납치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시마네 현 마츠에시의 음식점에서 근무하던 카시와기 사치코(당시 26세)는 2012년9월부터 행방 불명이 되어었고 그 후 3년후인 2015년8월 수심 4m의 강바닥에서 그의 차를 발견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4월22일 사이타마 현의 18세 남성 4명이 경승요차를 타고 심령 스팟을 하러 가던중 울타리를 뚫고 15m 절벽 아래로 추락해

1명 사망.3명이 경상을 입은 추락사고가 있었습니다



실종된 여성2명도 심령스팟을 하러가다가 절벽 아래로 추락하거나 강에 빠져서 못찾은게 아니였던것일까요?




츠보노 온천장(坪野鉱泉肝試し失踪事件)은 호쿠리쿠 일대에서 가장 무서운 귀신체험 장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곳은 밤마다 악귀가 나타나며 위층에서 소리가 들리고 창문에서 누군가가 들여다보는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합니다


귀신에게 홀려 해코지를 당해던것일까요?


미제사건으로 남게된 이 사건은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로 남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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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S 김은정 아나운서 실종 미제사건

실화괴담/미스테리|2019. 2. 4. 14:41

아나운서 김은정 실종 사건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김은정 아나운서는 경상북도 영주 출신으로 1978년 이화여자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동아방송 아나운서로 입사를 했고 결혼후 2달만에 이혼을 하고 방송 활동에 집중했다고 합니다

김은정 아나운서 사진


1984년에 KBS에 입사후 1989년에 그만둔후 1989년 TBS에 이직하여 안녕하십니까 TBS와 함께라는 프로그램 진행을 했다고 합니다 추석 전날인 9월21일 오후 9시쯤 살고 있는집 서울시 서대문구 창천동 집을 나섰고 50여미터 떨어진 고모집에 들러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새벽 5시에 추석 생방송 때문에 일찍 집에가야한다면 고모집을 나간게 마지막이였다고 합니다


단 한 차례의 방송 펑크도 낸적이 없는 김은정 아나운서였는데 방송국과도 연락이 끊겼고 실종 3일째가 되자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하게 됩니다



실종후 김은정의 언니는 매일 방송국으로 대신 출근해서 동생에게 걸려오는 전화를 일일히 확인하고 경찰이 가족들의 요청에 따라 비밀수사를 벌이면 남자관계등을 추적했지만 어떠한 단서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평상복 차림으로 현금 백만원을 갖고 사라졌다는 점으로 보아 돌발사고나 났을지도 모른다는 추측뿐이였다고 합니다


평소에 직장 동료들에게 수면제 구입에 관해 물어봤고 전동차에 치여서 죽고싶지만 그러지 못하겠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자살기도 추측을 했지만 당시 가족이나 동료들은 자살 가능성을 낮게 보았다고 합니다


이후 2~3년간 실종 수색이 이루어졌고 1993년 공개수배 사건25시를 통해서 수소문했지만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결론으로 수사는 종결이 되었습니다

2019년 현재까지 28년동안 김은정 아나운서의 행방과 시신조차 발견되지 않은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됩니다


납치.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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