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나타한 섬 사건 배틀로얄

실화괴담/사건사고|2019. 5. 1. 13:35

일본 아나타한 섬 사건(アナタハン島事件), 여자 1명과 남자 31명이 아나타한(Anatahan) 섬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일본 영화 배틀로얄이라고도 불린다

 

일본 아나타한 섬 사건

 

1944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있을 시기다 1945년 1월, 32톤 다랑이 잡이 어선 헤이스케 마루(兵助丸)가 일본 해군 으로부터 징용이 되고 5월 24일, 물자를 싣고 요코하마항을 출항하여 마 라리아 제도를 향했다
이 날 아침, 이들의 어선은 사이판 부근을 향해 남하하다가 미군 전투기에 발견되어 공격을 받아 헤이스케 마루(兵助丸)와 아케보노 마루(曙丸) 두척이 침몰한다 승무원들은 필사적으로 헤엄쳐 섬에 도착해 목숨을 건졌다 그 섬은 아나타한 섬(Anataban Island)이었다

 

같은 시기 공격을 받아 에비스 마루(えびす丸)가 침몰되어 카이호우 마루(海鳳丸)의 에비스 마루의 생존자를 태워 아나타한 섬에 도착했다 다음 날 유일한 이동수단이었던 카이 호우 마루는 공습을 받아 파괴되어 해군 10명과 민간인 21명이 아나타한 섬에 체류하게 된다

 

이 섬에는 70명 정도의 원주민이 생활하고 있었고 일본 기업에 의해 야자수 농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인 기술원 1명과 그의 아내 히가 카즈코(比嘉 和子)가 있었다 당시 그녀의 남편은 파간 섬으로 여동생을 데리러 간다며 그 길로 소식이 끊겼다

이때부터 서바이벌 게임이 시작되었다 영화 배틀로얄(バトル ロワイアル , Battle Royale , 2000)이 이 사건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농원이 있었으나 32명이 먹고 살기엔 여유가 없었다 1개월도 못 버티고 식량은 바닥이 났었다 그래서 이 32명은 각 그룹으로 나누어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동안 살아남기 위해 도마뱀이나 박쥐, 야자 집게 등을 잡아먹었다 살아 남기 위해 먹을 것을 찾으려고 섬 구석구석을 찾아 헤매는 일이 주 일과였다 어느 날, 폭풍우로 인해 1명이 파도에 휩쓸려 행방불명이 되었다

이들이 섬에 있은지 1년이 지난 1945년 7월 중순에서 1개월 사이 매일 공습을 받았고 원주민들은 미군이 데리고 가거나 탈출하여 일본인 32명만 남게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9월, 일본이 항복했다고 미 해군 함정에 승선하라고 했으나 이들은 패전을 믿지 않았고 계속 섬에 남기로 결정을 한다

 


슬슬 섬에 적응한 이들은 먹을것에 걱정을 안 해도 될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 코코넛으로 술을 제조해서 술파티를 했었고 바나나, 토란, 사탕수수, 과일을 먹었고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서 먹거나 해초를 먹었다
취사 중 연기가 나면 미군에게 발견이 되어 공습을 받을것음 염려해 아침에 하루 세끼분을 준비했고 미군을 주시했다 가끔 미군이 보트를 타고 섬에 상륙했으나 금방 철수를 했고 미군이 피고 남은 담배꽁초를 주어서 피곤했다 이들의 즐거움 중 하나였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먹을것에 여유가 생기자남자들은 잊고 있었던 욕망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아나타한 섬에 유일한 여자였던 히가 카즈코를 둘러싸고 쟁탈전이 벌어지고 말았다
농원 기술자와 카즈코가 부부 사이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이들은 더욱 달려들었다 위험을 느낀 카즈코는 도움을 청하는 형태로 농원 기술자와 동거를 시작했으나 보호를 받지 못했다 농원 기술자는 카즈코가 다른 남자와 말을 주고받는 것을 보자 카즈코에게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1946년 2월, 헤이스케 마루의 선장이 급사를 했고 같은 해 8월, 미군의 배가 섬으로 오자 기술자와 카즈코는 산속으로 피신했는데 미 육군 b-29 폭격기의 잔해를 발견하게 된다 낙하산과 통조림을 회수하게 된다 이후 32명은 비행기 추락 현장으로 가서 낙하산 6개와 휘발유 탱크 7개 등을 회수해 옷을 만들거나 냄비를 만들었고 칼을 만들기도 했다 또한 남성 2명은 망가진 권총 3정과 실탄 70발을 발견해 2 정의 권총을 완성시켜 무기를 완성시킨다 이때부터 아나타한 섬에 배틀 로열이 시작된다

이때부터 남자들의 카즈코 쟁탈전이 시작되었다 한 여자를 가지기 위해 치열한 전쟁이었다 

얼마 후, 사이가 나빴던 2인조 남성 두명중에 한 명이 사망하게 된다 나무에서 떨어졌다고 했으나 목격자가 없어서 사람들은 그렇게 믿게 되었다

 

이후 농원 기술자의 질투심에 질린 카즈코는 C 남자와 눈이 맞아 산속으로 도망갔으나 좁은 섬이라 결국 농원 기술자의 품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권총 2인조의 한 사람이었던 A 남자는 노골적으로 카즈코에게 접근을 한다 너 내 여자가 돼라 거절하면은 농원 기술자를 죽이겠다는 협박을 하자 카즈코는 이 사실은 농원 기술자에게 말하지만 나는 죽고 싶지 않다 그놈 곁으로 가라고 말을 듣게 된다

 


그런데 상황이 이상하게 되어버렸다 농원 기술자,A 남자, D 남자, 카즈코 4명이 같이 살게 된다 홍일점 카즈코는 3명의
남편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이 생활은 오래 가지 못했다
1947년 가을, 2인조 D남성이 권총 조였던 A 남성을 사살했다 다음 해인 1948년 신변에 위험을 느낀 농원 기술자는 D남자에게 카즈코를 넘겨주었다

3개월이 지난 어느 날,D남자가 행방불명이 되었다 농원 기술자와 카즈코는 D남자가 낚시하던 중에 바다에 빠져 죽었다
라고 했으나 아무도 믿지 않았다 둘이서 D남자를 죽였다는 증거는 없었으나 농원 기술자와 카즈코의 사이가 좋아졌다점에서 의심을 했으나 남자가 한 명 더 줄어들었다는 점에서 추궁은 하지 않았다

 

반년이 지난 어느 날, 이번에는 농원 기술자가 급사했다 카즈코를 쟁탈한 E남자는 농원 기술자는 식중독으로 죽은 것 같다고 변명을 했다 매일 같이 음식을 다 같이 먹었는데 농원 기술자만 식중독으로 죽었다?라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권총을 가지고 있던 E남자가 농원 기술자를 총으로 쏴 죽였다는 말이 가장 신빙성이 있었다

그 뒤로 1948년 2월까지 카이호 루 마루 갑판장이 절벽에 떨어져 죽었고 아케보노 마루 갑판장이 식중독으로 죽었다 의문 투성이의 죽음이었으나 그들에게는 조사할 방법이 없었다 그 와중에 권총을 가지고 있었던 E남자도 의문의 익사를 했다 파도에 휩쓸려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했으나 역시나 신빙성이 없었다

남자 23명 여자 1명이 생존하고 있는 가운데 최고 연장자였던 F남자가 어떤 제안을 하게 된다 카즈코에게 정식으로 남편을 선택하게 하고 남은 사람들은 축복해주고 더 이상 간섭하지 말자는 약속의 내용이었다 카즈코는 F남자의 제안을 받아들여 처음에 눈이 맞았던 C남자를 선택하고 결혼하기로 한다

남태평양 마리아나 제도(Mariana Islands)의 아나타한 섬(Anataban Island)에서 카즈코와 F남자는 결혼식을 올리게 되고
살아남은 동료들은 이 둘의 결혼식을 축복했다
그리고 이들은 권총이 모든 사건의 원흉이라며 권총 2정 모두 부순다음에 바닷속에 버리게 되었다

1949년 가을, 미군이 항복을 권유하는 전단(전단)을 뿌렸으나 이들은 일본의 패전을 믿지 않았다 미군의 모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당시 110km 덜어진 사이판에서는 불발탄 처리를 하고 있었고 이때의 폭음이 아나타한 섬까지 들려왔고 전쟁 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다음 해인 1950년 6월, 사이판에서 폭발음이 멈췄고 전쟁이 끝나나 생각을 했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그때 미 해군의 배가 섬에 찾아왔다 카즈코는 도망가는 일행들을 따라가지 않았고 혼자서 미 해군 배로 가서 섬을 탈출하였다 이때 카즈코의 나이는 28살이었다 구출선의 일본인들과 카즈코는 편지와 일본 신문 등을 남겨 두고 갔으나 섬에 남은 남자들은 여전히 종전 사실을 믿지 않아 섬에 계속 잔류하였다 카즈코와 결혼하려고 했던 C남자는 외톨이가 되어 병사했다
1951년 1월, 카즈코가 지난해 7월 사이판에서 C남자 앞으로 보낸 편지가 해안에 도착해 있었다 같은 달 아케보노 마루의 선장이 손목에 커다란 상처를 입고 죽었다

남자 21명 여자 0명이 생존하고 있는 가운데 6월, 미국은 비행기로 전단(전단)을 뿌리고 있었다 수일이 지나 생존자 남자들에게 편지가 도착했다 맥아더 장군과 쇼우, 천황이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이 있는 신문과 같이 편지가 도착했고 이걸 본 남자들은 이제야 전쟁이 끝났다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신문과 편지를 싣고 온 배에 군인 출신 한 남자는 승선을 하고 섬을 떠났고 6월 14일 남은 남자들은 다음에 미군이 오면 항복하자고 의논했다

 


남자 20명 여자 0명이 생존하고 있는 가운데 6월 26일 미군은 다시 비행기로 전단을 뿌렸고 아나타한 섬에 남아있는 남자들은 흰색 천을 흔들어 비행기를 향해 신호를 보냈다 그 전단에는 6월 30일, 영접하러 배를 보내겠다는 내용이었다 6월 30일, 20명의 남자들은 머리와 수염을 깎고 신변 정리를 마치고 영접을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대로 150cm 떨어진 바다에 배가 정박해 있었고 보트 한 척이 해안으로 다가왔다
20명의 남자들은 7년간의 여정을 끝내고 그 보트를 타고 아나타한 섬을 탈출했다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아 귀국을 했지만 또 다른 비극이 기다리고 있었다

카즈꼬의 본래의 신랑은 행방불명이 된 카즈코를 죽은 것으로 생각하고 재혼해 있었고 어선 승무원의 어부 남자의 처도 재혼했다 이 남자 동료의 처는 이 남자의 동생과 결혼하여 아이까지 낳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남자들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고 한다

이들이 귀국하고 1952년 아나타한 섬에서의 기묘한 생활은 대대적으로 보도되었고 카즈코를 여왕벌이라고 불렀다 히가 카즈코는 그 뒤 재혼했고, 22년간 조용히 살다가 1972년 50세의 나이에 뇌종양으로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다

아나타한 섬에서 일어난 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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